본문 바로가기

글 속에 세 들어 살다 부분 불이 환하게 켜진 방에서는 창 밖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두운 길에서 불 켜진 방을 바라보면 실내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인다. 행복한 사람에게 타인의 불행은 잘 감지되지 않는 반면, 불행한 사람에게 타인의 행복은 너무 빛나고 선명해 보이는 것도 같은 이치일까. 그런데 불빛 아래 있을 때는 정작 자신을 둘러싼 그 빛의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불빛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그 시간들이 얼마나 따뜻하고 축복받은 순간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몇 해 전,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두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 감기도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 온 아이에게 갑자기 1형 당뇨라는 질병이 찾아 왔을 때, 정말 눈앞이 캄캄해졌다. 당장 오르내리는 혈당을 안정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어린 .. 더보기
우연한 떠남 여행 마음과 생각을 더 순조롭게 움직일 수 있는 행위. 꿈의 텐션. 벗어나서 합류하는 일. 떠나서 돌아보는 일. 마음을 싸매는 일. 멀리서 당신을 기억하는 일. 그리운 것들을 잊지 않는 일. 그리하여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일. 지울 수는 없으나 다시 쓸 수는 있는 일. 허공 간절한 마음의 눈높이, 그러나 정확하지 않은 위치. 마음을 걸 수 있다면 어디든 허공. 사람들은 자주 하늘을 본다지만 그것은 하늘을 보는 게 아니라 허공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늘은 허공이 아니며 허공엔 하늘이 없다. 그저 아무 것도 없어야 하며 그래서 오로지 내 마음만 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내게 삶이란 그 간절한 한곳에 마음을 걸고 평생을 그곳으로 향해 걷다가 죽는 일이다. 자주 허공을 바라본다. 마음을 걸 자리를 찾기 위해서.. 더보기
우리 이 시대 불과 엿새 사이다. 두 차례나 옛 직장 동료의 부모님이신 노부부의 장례식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두 어른 모두 노환을 앓아 오셨다고 했다. 모친이 먼저 떠나시자 이내 부친도 따라 가셨다. 애닯은 일이다. 지하철역에서 세브란스병원까지 오랜만에 걷게 된 신촌 거리는 아랑곳 없이 활기찼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던 아주 오래 전 낭만의 대학가가 아니었다. 대형 체인점과 옷가게들이랑 음식점들이 서로 더 가까이 할 수 없을 만큼 밀집해 뜨거웠지만, 더 이상 체온을 나누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거리였다. 오직 따뜻함이 묻어난 곳은 입구에 여전히 건재한 『홍익문고』와 서점에서 리모델링 기념으로 열고 있는 길거리 피아노연주회였다. 재작년이던가 50여 년 역사의 서점이 초대형 고층빌딩을 짓기 위한 재개발지구에 편입돼 사라질 위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