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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우리 이 시대


 

불과 엿새 사이다. 두 차례나 옛 직장 동료의 부모님이신 노부부의 장례식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두 어른 모두 노환을 앓아 오셨다고 했다. 모친이 먼저 떠나시자 이내 부친도 따라 가셨다. 애닯은 일이다.

 

지하철역에서 세브란스병원까지 오랜만에 걷게 된 신촌 거리는 아랑곳 없이 활기찼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던 아주 오래 전 낭만의 대학가가 아니었다. 대형 체인점과 옷가게들이랑 음식점들이 서로 더 가까이 할 수 없을 만큼 밀집해 뜨거웠지만, 더 이상 체온을 나누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거리였다.

 

오직 따뜻함이 묻어난 곳은 입구에 여전히 건재한 홍익문고와 서점에서 리모델링 기념으로 열고 있는 길거리 피아노연주회였다. 재작년이던가 50여 년 역사의 서점이 초대형 고층빌딩을 짓기 위한 재개발지구에 편입돼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지역주민들과 단체들이 발벗고 나서서 구해냈다는 훈훈한 소식을 접한 적이 있었다.

 

다만 내가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돈이 아니었다. 재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한 가치를 보존하고 싶었다. 부친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은 자리에서홍익서점 역사 100을 채우라고 말씀하시며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고 있는 아들의 말이다.

 

역사적 가치논리가 경제적 가치논리를 이겨내는 일이 점점 더 힘겹고 흔치 않은 이 시대를 우리는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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