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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글 속에 세 들어 살다



<저 불빛들을 기억해> 부분

 

불이 환하게 켜진 방에서는 창 밖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두운 길에서 불 켜진 방을 바라보면 실내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인다. 행복한 사람에게 타인의 불행은 잘 감지되지 않는 반면, 불행한 사람에게 타인의 행복은 너무 빛나고 선명해 보이는 것도 같은 이치일까. 그런데 불빛 아래 있을 때는 정작 자신을 둘러싼 그 빛의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불빛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그 시간들이 얼마나 따뜻하고 축복받은 순간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몇 해 전,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두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 감기도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 온 아이에게 갑자기 1형 당뇨라는 질병이 찾아 왔을 때, 정말 눈앞이 캄캄해졌다. 당장 오르내리는 혈당을 안정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어린 나이부터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으며 살아갈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려 견딜 수가 없었다. …..  

 

며칠이 지나고 나의 시야에는 점점 병동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아 병동의 아이들과 그 부모들은 저마다의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 열 살의 나이에도 돌배기 정도밖에 성장하지 못하고 인공적인 관리로 간신히 생명을 이어 가는 아이, 소화 기능이 약해 고무호스로 영양을 공급 받고 배설해야 하는 열두 살 소년, 척추와 뇌에 종양이 생겨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열다섯 살 소녀. …..

 

어느 날 저녁, 우리는 복도 끝에 앉아 잠시 쉬면서 맞은편 병동을 바라보았다. 수백 개의 창문들에 불이 켜져 있었고, 그 속에는 각기 다른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늘상 보아온 풍경이지만, 그날따라 불빛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렇다. 불 켜진 방이라고 해서 늘 행복한 온기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창문들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말했다.

저 수많은 창문들을 보면, 지금은 병원에 있으니까 주변에 아픈 사람들뿐이지만, 퇴원하면 너는 건강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야 해. 그러다 보면 왜 나만 이렇게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 거야. 그때 저 불빛들을 기억해. 저렇게 수많은 방 속에서 병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

 

 

<식사를 소풍으로 바꾼 저녁> 부분

 

….. 직장에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다시 집안일에 매달려야 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그날은 유난히 몸과 마음을 꼼짝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어쩌랴. 제비 새끼 같은 아이 둘이 저녁식사를 기다리고 있으니! …..

밥을 차리는데 갑자기 가슴 아래서 뜨거운 기운이 울컥 하고 치밀어 올라왔다. 그것은….. 오래 누르고 눌러 두었던 설움 같은 게 밖으로 빠져 나오려는 아우성에 가까웠다. 사업에 실패한 뒤로 빚쟁이들에게 쫓기고 있는 남편의 초췌한 얼굴과 집으로 수시로 걸려오는 협박 전화들…... . 나는 갑자기 대접과 접시에 담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음식들을 도시락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외쳤다.

얘들아! 우리 소풍 가자.”

아이들은 엄마의 갑작스런 제안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좋아라 따라 나섰다. ….. 우리는 해가 지는 공원 빈터의 넓은 바위 위에 상을 차리고, 우리는 하루살이처럼 잉잉거리면서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의 입에 구운 고기를 넣어 주며 나는 그것이 내 살점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엄마의 복잡한 심사를 알 리 없는 아이들은 해맑은 눈동자로 웃으며 장난을 쳤다. 그 눈동자 속에도, 우리가 먹어 치운 빈 밥그릇 속에도 붉은 노을이 담겨 있었다.

 

얘들아, 꼭꼭 씹어 삼켜라.

그게 엄마의 안창살이라는 걸 몰라도 좋으니.

언젠가 오랜 되새김질 끝에

네가 먹고 자란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너도 네 몸으로 밥상을 차릴 때가 되었다는 뜻이란다.

그때까지, 그때까지는

저 노을 빛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소풍> 부분

 

소풍을 끝내고 우리는 어둑해진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언젠가 자라 스스로 밥상을 차리게 되었을 때, 바위에 둘러앉아 먹었던 밥을 기억하기 바라면서, 먼 훗날 그 기억이 삶의 근원적인 허기를 달래주고 고단함을 어루만져 주기를 바라면서. …..

 

나희덕 산문집 『저 불빛들을 기억해』 중에서

 

 

나희덕 시인하면 내게는 따뜻한 손길 건네는 누이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산문집 저 불빛들을 기억해에서 꿈 많은 문학소녀로,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시인으로 그리고 교육자로 살아가는 애환 서린 글들을 통해 나도 위로 받고 이미 그 속에 세 들어 살고 있음을 시인은 알고 있을까. 예전에 읽었던 이 처럼…..

 

방을 얻다 / 나희덕

 

담양이나 창평 어디쯤 방을 얻어

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

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

오래된 한옥 한 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저씨는 숫돌에 낫을 갈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밭에서 막 들어온 듯 머릿수건이 촉촉했다.

- 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일주일에 두어 번 와 있을 곳이 필요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한옥 쪽을 가리키자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 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라제마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깃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 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방을 마음으로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내가 이미 세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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