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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삶 Living the Good Life



시골로 가니 희망이 있었다

 

대공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1932년에 우리는 뉴욕에서 버몬트 시골로 이사했다. 처음에 우리의 모험은 그저 땅에 뿌리를 내리고 단순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었다. 자연 속에서 서로 돕고 기대며, 자유로운 시간을 실컷 누리면서 저마다 좋을 것을 생산하고 창조하는 삶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우리는 국내외 도시 몇 군데서 산 적이 있다. 그 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단순하고 고요한 삶을 방해하는 요소들인 복잡함, 긴장, 압박감, 부자연스러움, 그리고 만만치 않은 생활비와 맞닥뜨렸다. ….

오랫동안 도시에서 살다가는 사회가 주는 압력을 이기고 몸의 건강과 정신의 안정, 사회 속에서의 건전함을 지켜 낼 수 없다는 게 점점 뚜렷해졌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우리는 더 올바르고 더 조용하고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가니 희망이 있었다.

 

도시를 떠날 때 세 가지 목표를 품고 있었다.

첫 번째는 독립된 경제를 꾸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불황을 타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다. 할 수 있는 한 생필품이나 노동력을 시장에서 사고 팔지 않는 독립된 경제를 계획했다. 그러면 고용주든 자본가든 정치가든 교육 행정가든 우리에게 간섭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두 번째 목표는 건강이었다. 우리는 건강을 지킬 뿐 아니라 더 건강해지고 싶었다. 도시 생활은 여러 가지로 우리를 조이고 억눌렀다. 건강한 삶의 토대는 단순했다. 땅에 발붙이고 살고, 먹을 거리를 유기 농법으로 손수 길러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세 번째 목표는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사는 것이었다. 우리는 되도록 많은 자유와 해방을 원했다. 여러 가지 끔찍한 착취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지구의 약탈자로부터, 사람과 짐승을 노예로 만드는 것으로부터 전쟁을 일으켜 사람을 죽이고, 먹기 위해 짐승을 죽이는 것으로부터 말이다.

 

우리는 생산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익과 불로 소득을 축적하는 데 반대했다. 우리는 땀 흘려 일해서 먹고 살고자 했다. 하지만 여가와 휴식을 갖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었다. 삶이 틀에 갇히고 강제되는 것 대신 삶이 존중되는 모습을 추구하고 싶었다. 잉여가 생겨 착취하는 일이 없이 필요한 만큼만 이루어지는 경제를 원했다. 다양함과 복잡함, 혼란 따위 말고 단순함을 추구하고자 했다. 병처럼 미친 듯이 서두르고 속도를 내는 것에서 벗어나 평온한 속도로 나아가고 싶었다. 물음을 던지고, 곰곰이 생각하고, 깊이 들여다볼 시각이 필요했다. 걱정과 두려움, 증오가 차지했던 자리에 평정과 뚜렷한 목표, 화해를 심고 싶었다

 

우리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해결이라니 어림도 없는 말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경험하고 보니 분명하게 드는 생각이 있다. 활기차고 힘이 넘치며, 목표 의식과 상상력과 결단력을 갖춘 보통의 집이라면, 경쟁을 일삼고 탐욕스러우며 남의 것을 빼앗는 문화의 멍에를 언제까지나 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경단이나 경찰의 간섭만 없다면, 그 집은 자연과 더불어 살림을 꾸려 갈 수 있다. 능률을 잃지 않고 오히려 높여 가면서 여가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여가 시간은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일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

 

1954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조화로운 삶을 찾아서

 

우리는 사람의 탐욕으로 움직여 가며, 남을 착취하여 얻은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부를 쌓으려고만 드는 이런 사회 구조를 인정할 수 없었다. ….

그리고 이 문명을 대신 할 확실한 대안을 찾지 않고서는 우리가 바라는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없다고 판단했다. ….

우리는 어중간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대안을 찾고 있었다. 우리가 조화로운 삶을 사는 데 기본이 될만한 것이라고 여기는 최소한의 몇 가지 가치들이 있었다. 그 기본 가치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단순한 생활.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남.

무엇이든지 쓸모 있는 일을 할 기회.

그리고 조화롭게 살아갈 기회.

 

단순함, 고요한 생활, 가치 있는 일, 조화로움은 단순히 삶의 가치만이 아니다. 그것은 조화로운 삶을 살려는 사람이라면 만족스러운 자연 환경과 사회 환경에서 당연히 추구해야 할 중요한 이상이고 목표이다.

 

우리의 두 번째 목표는, 일을 해서 삶의 기쁨을 키워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찾는 일이었다. 허리를 굽혀 일을 함으로써 자기가 성장해 가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가치 있고 소중하게 여기는 일이었다. 스스로 땅을 일궈 먹고 살수 있게 된다면,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는 이 거대한 현대문명의 손길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세 번째 목표는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많은 부분을 자유 시간으로 갖는 것이었다. 단지 먹고 사는 일에서 벗어나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일에 몰두하고, 이웃들과도 결실이 있는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홀로 또는 집단의 한 사람으로 사회를 개선하는 일에 열정을 쏟을 수 있기를 꿈꾸었다

 

삶의 원칙


 ‘돈을 번다거나, ‘부자가 된다는 생각은 사람들에게 매우 그릇된 경제관을 심어 주었다. 우리가 경제 활동을 하는 목적은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한 것이다. 돈을 먹고 살 수는 없으며, 돈을 입을 수도 없고, 돈을 덮고 잘 수도 없다. 돈은 어디까지나 교환 수단일 뿐이다. 의식주에 필요한 물건을 얻는 매개체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는 것들이지 그것과 맞바꿀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사람과 책 Men and Books>에서 이렇게 썼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돈은 우리가 사도 되고 안 사도 되는 상품의 하나이며, 우리가 마음껏 탐닉할 수도 있고 절제할 수도 있는 사치품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돈보다 더 탐닉할 수 있는 많은 사치품들이 있다. 그것은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 시골 생활, 마음이 끌리는 여성 같은 것이다.”

 돈의 경제 속에서 살아 온 사람들은 돈을 벌어 쌓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사회가 그렇게 가르친 것이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건강은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다. 건강할수록 더욱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누릴 수가 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하고, 집 짓는 계획을 세우고, 좋은 곡식을 가꾸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간다 해도, 이 일들이 집을 짓고 농사짓는 사람의 건강에 도움이 안 된다면 아무 뜻이 없을 것이다

 건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건강을 어떻게 정의 할 수 있는지 많은 의사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면 보통 듣는 대답은 균형 있고 정상인 몸의 기능또는 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병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건강을 잃어버리는 일”.

 영국인 의사 렌치(G. T. Wrench) <건강의 수레바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병은 오직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과 좋지 못한 음식을 먹는 사람을 공격한다. 병을 예방하고 내쫓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먹는 것에 달려있다. 그 다음으로는 좋은 환경에서 사는 것이다. 항생제, , 예방 접종, 제거 수술 따위는 진정한 문제를 피해 가고 있다. 병은 영양이 모자란 사람이나 동물, 식물에게 위험을 경고해 주는 감지기 노릇을 한다.”

 렌치가 이야기하는 건강의 수레바퀴, 건강한 흙으로부터 건강한 식물과 동물로 이어지는 순환과, 다시 이러한 식물과 동물이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을 말한다. 그리고 거기서 또다시 순환이 시작된다. 이 순환의 높은 차원에서 다시 시작될 수도 있고 낮은 차원에서 시작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순환하는 동안 땅이 기름진지 아니면 척박한지에 달려있다.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무엇을 믿고 있든 사람은 자기 믿음에 따라 행동하거나, 믿음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수 있다. 자기 믿음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때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동시에 그러한 행동은 이론 따로 실천 따로인 삶을 낳고 겉과 속이 다른 성격을 만든다. 가장 조화로운 삶은 이론과 실천이, 생각과 행동이 하나가 되는 삶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순간순간,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어떠한 시간이나 자기가 더 바람직하게 여기는 삶을 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몸, 균형 잡힌 감정, 조화로운 마음, 더 나은 생활과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꿈을 간작한 삶은 그것이 혼자만의 삶이든 공동체의 삶이든 이미 바람직한 삶이다. ….

 개인의 건강과 행복이라는 잣대로 본다면 버몬트에서의 우리 삶은 확실히 성공이었다. 그렇지만 사회로 보자면 공동체를 만들려는 우리의 노력은 실패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사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결속력이 무너진 사회에서 지역 공동체를 만들려고 애쓰면서 이 문제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어려움을 알았더라도 우리는 그대로 맞섰을 것이다. 왜냐 하면 어떤 일을 하는 보람은 그 일이 쉬운가 어려운가, 또는 그 일에 성공할 수 있는가 아닌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과 인내, 그 일에 쏟아 붓는 노력에 있기 때문이다.

 삶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소유와 축적이 아니라 희망과 노력이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없을지라도,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는 일을 다시 한번 실천할 생각이 있다. 그 때는 단순히 우리 두 사람이 먹고 사는 일뿐 아니라 사회가 두루 함께 조화롭게 사는 길을 찾으려고 애써 보리라.



 

*헬렌 니어링(1904~1995)과 스코트 니어링(1883~1983) 1932년부터 1952년까지 버몬트에 살았으며, 버몬트에 스키장이 생기고 관광객과 방문객이 늘어나자, 1952년 봄 마지막으로 사탕단풍나무에서 시럽 얻는 일을 마친 뒤, 공들여 지은 돌집과 훌륭한 밭들을 뒤로 하고 메인 주의 또 다른 시골로 이사를 했다.

 

조화로운 삶 Living the Good Life

-‘헬렌과 스코트 니어링이 버몬트 숲 속에서 산 스무 해의 기록중에서

 

 

 이 기록이 쓰여진 건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이다. 그렇지만 오늘 읽어도 전혀 옛날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올바른 삶을 추구함은 시대의 변화나 문명의 발달 그 건너편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