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그 하루를 정원에서 보내리라.
허리를 굽혀 흙을 파고
작은 풀꽃들을 심으리라.
내가 떠나간 뒤에도
그것들이 나보다 더 오래 살아 있도록.
아마도 나는 내가 심은 나무에게 기대리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새와 곤충들 또한 나처럼 그 나무에
기대는 것을 바라보리라.
그리고 어쩌면 나처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지막으로 흙 위로 난 길을 걸으리라.
걸으면서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진실했던 때를 기억하리라.
아마도 그것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되리라.
그 어느 날보다 후회하지 않는.
<앤 히긴슨 스파이서 - 만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무, 나무라는 피조물을 이토록 아름답고 따뜻하며 투명하게 바라보는 명상이 또 있을까? 인간과 대지를 연결하는 한 농부의 삶과 사상을 다룬 책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나무에 대한 대화’ 에서 피에르 라비는 이렇게 말한다.
"나무는 우리 행성에 난 털과 같습니다. 활짝 깨인 감각을 갖고 가까이서 관찰해 보면 나무들이 하늘을 향한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알 것입니다. 그것은 태양의 에너지를 받기 위한 행동입니다. 이 우주 안에서 지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외부와 소통할 수 있습니다. 나무는 그 중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나무는 단지 섬유질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생리학적인 요소들로도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무 안에는 마술과도 같은 일을 벌이는 살아 있는 존재가 있습니다. 나무는 대지와 하늘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나무는 대지를 보호합니다. 우리가 나무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무는 거친 생활환경을 부드럽게 가라앉혀 줍니다. 대지가 사막처럼 벌거숭이가 되고, 나무를 보호하는 잎사귀들이 사라지면, 대지는 금방 황폐한 침식 작용을 겪게 됩니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일어서는 대지의 일부분이라고 나는 덧붙여 말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커다란 삼나무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 나무들은 실로 거대합니다. 사람들은 그 나무가 사라질 때 땅에 커다란 구멍을 남길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 나무는 그 자체로 이미 땅이며, 죽으면서 대지에 흙을 더할 뿐입니다. 다른 나무들이 죽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나무는 땅속으로 들어가 거름이 됩니다.
나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 중 하나입니다. 나무는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조용히 침묵만 지키는 것 같지만 나무는 노래도 할 수 있습니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내는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곧 나무의 노래입니다. 그 노래는 인간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나무는 또한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요소들에 민감하게 작용하며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나뭇잎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잎맥 끄트머리까지 생생히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무는 이처럼 존재 끝까지 살아 있습니다. 또 겨울이 되어 잎이 모두 지면 나무의 속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 역시 아름답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봄에 나무의 연 초록 빛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고, 여름에는 정열로 가득한 모습을, 가을에는 불타는 듯한 색조를, 그리고 겨울에는 나무들이 검소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잔가지 하나하나까지 속속들이 나무의 형태를 감상하는 일은 특별히 즐겁습니다. 겨울 나뭇가지들은 마치 폐의 모양과 같습니다. 나무들은 우리 지구 행성의 폐가 아닐까요? 언젠가 비행기를 타고 사막 위를 날면서 나뭇가지처럼 갈라져 나간 길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길들에서 나는 나무의 줄기와 잔가지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름답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풍경이었습니다."
나무가 생명을 지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라는 찬사가 내게도 결코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삼림 관리원들은 우리가 숲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나무들이 영양분을 얻을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져 버린다고 주장한다.’ 는 대담자의 말에 피에르 라비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숲이 수백만 년을 지나는 동안 우리 인간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숲은 스스로를 돌봐 왔고, 관리하는 인간 없이도 존재해 왔습니다. 숲은 혼자서도 뭐든지 잘 할 수 있으며, 나무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탐욕에 의해 나날이 훼손되고 줄어드는 나무와 숲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무에게는 생명이 필요합니다. 나에게도 역시 그렇습니다. 내가 그런 식으로 나무와 협약을 맺는 순간,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그런 평등한 관계가 삶에 건강한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쌓아 두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문제입니다. 쌓아 두려고만 한다면 인간은 더 이상 조화로운 삶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나무는 엄연히 살아있는 존재이며, 인간이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무에게 해를 끼칠 때마다 우리는 우리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나무 한 그루를 베어 낼 때마다 곧 우리 자신에게도 도끼를 들이대는 것입니다.
눈에서 비늘을 떼어내고 나무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나는 친구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중에 우리는 지평선 위로 모습을 드러낸 커다란 떡갈나무 근처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친구에게 ‘저걸 봐!’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래! 판자를 족히 수십 개는 뽑아내겠는걸.’ 우리는 같은 나무를 보고 있었지만, 같은 시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회교도인 알제리 사막 오아시스의 원주민으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기독교도인 프랑스인 양부모를 따라 파리로 와 '피에르 라비'라는 세례명으로 살게 되었지만, 회교도인 원주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도인 프랑스인도 아닌 채 양쪽에서 소외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치우치지 않고 열린 세계관과 종교관을 갖게 되었으며, 오로지 자연의 생명 그 자체가 기적이요 신이라는 새로운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늘 기적에 대한 말을 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기적은 일상입니다. 흙 속에 씨앗 한 알을 심으면, 그것은 자라나 식물이나 나무가 됩니다. 밀알 한 알갱이 안에는 대지 전체에게 양분이 될 모든 에너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초자연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 초자연적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신의 존재에 대해 그 이상의 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기적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원은 지금 이 순간 속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종교입니다.
나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생명 그 자체가 신이며, 그것이 바로 풀들을 밀어 올리고 나무들을 자라게 하는 생명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자각하고 경험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영속적인 기적에, 그 생명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생명, 즉 신을 모독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의식과 교리, 체제들에 대해 나는 더 이상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현대인들이 영성에 대해 너무도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말하는 것들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또한 자신들을 안심시킬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잘 설명해 줍니다. 만일 확신이 있다면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생명 그 자체로 살아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이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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