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道 하나> 꾸밈없는 자연의 이치를 나 또한 다 헤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故常無, 欲以觀其妙, 常有, 欲以觀其徼。此兩者同, 出而異名,同謂之玄。玄之又玄,衆妙之門。 老子는 말했고, 나는 이렇게 들었다. "자연의 이치를 본 받는 인간의 이치를 나는 道라고 부른다. 그러나 道라는 말로 다 표현되는 것은 아니니,그 이름을 떠나 꾸밈없는 자연의 이치를 나 또한 다 헤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치와도 다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름 없음, 하늘과 땅이 열려 만물이 시작됨은 자연의 이치이고, 이름 붙임, 그 만물의 근원을 가늠하고자함은 인간의 이치이다.자연의 이치, 그 오묘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니, 인간의 이치로 표현 할 수 있는 것은 그 언저리일 뿐.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이치, 그 출발이 다르다고는 하나.. 더보기
<序 셋> 자연 만물과 인간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이야기 老子의 물음에 나는 생각했다. 道하면, 우선 글자 뜻 그대로 '길'이 떠오르고, 그 길 걸어가는 누군가가 떠오르고, 그 길 끝 산속 흰 수염 '그대'가 떠오르고, 학창시절 '도덕책'이 가물가물 떠오르고, 이런 저런 道라는 이름의 생각들이 날개를 달고 허공을 날아 다닌다. 道란, 그 생각들 모두인 것 같고, 이도 저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학창시절 老子나 莊子하면 그저 道通한 산신령이겠거니 했다. 알 것 같으면서도, 끝내 알 수 없는 말을하는 神仙. 결코 범접할 수 없는 神仙. 호기심에 책을 펴 읽다가도 이내 내려놓던 神仙들의 이야기. 그런데 나이들어 다시 책을 펼치니, 그 神仙이 인간으로 내려와 내 곁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며, 실체조차 분명치 않은 道를 화두로 끌어.. 더보기
<序 둘> 그대는 삶을 '무엇'이라 적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어느 날 문득, 노자는 내게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나는 자연의 이치를 '無爲自然'이라 적고, '꾸임없어 저절로 그러함'이라 읽는다. 자연 만물은 저절로 그러하다. 인간은 자연에 속하면서도 자연 만물에는 필요치 않은 생각과 행위와 물질로 문명을 쌓아올려 자연에 군림하면서 더 이상 저절로 그러하지 않게되었다. 이에 나는 자연 만물의 이치를 본 받은 인간의 이치를 '道(理)'라 적고, '마땅히 그러함'이라 읽고 싶었다. 인간은 마땅히 그러하지도 않아왔기 때문이다. 마땅히 그러하지 않아온 건 '무엇' 때문일까? '어떻게'하면 마땅히 그러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저절로'와 '마땅히'가 서로 함께할 수는 없을까? 과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그대는 삶을 '무엇'이라 적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