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故常無, 欲以觀其妙,
常有, 欲以觀其徼。
此兩者同, 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老子는 말했고,
나는 이렇게 들었다.
"자연의 이치를 본 받는 인간의 이치를
나는 道라고 부른다.
그러나 道라는 말로 다 표현되는 것은 아니니,
그 이름을 떠나 꾸밈없는 자연의 이치를
나 또한 다 헤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치와도 다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름 없음, 하늘과 땅이 열려 만물이 시작됨은
자연의 이치이고,
이름 붙임, 그 만물의 근원을 가늠하고자함은
인간의 이치이다.
자연의 이치,
그 오묘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니,
인간의 이치로 표현 할 수 있는 것은
그 언저리일 뿐.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이치,
그 출발이 다르다고는 하나,
양자 공히 심오하고 아득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내게는 이것도 심오하고 저것도 아득하다.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이치(道)는
내게 온갖 오묘함의 배움터이다."
*
노자의 말에 귀 기울여 새삼 생각했다.
자연과 인간의 차이에 대하여.
자연과 인간사이에 있고 없음에 대하여.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같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같지 않다.
말은 의사를 나타내는 관념일 뿐,
실제 행동은 아니다.
'"이것이 道!"라고 말하는 것'과
'그 道를 행하는 것'도
같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같지 않다.
道라는 말은
그것의 한부분을 나타내는 관념일 뿐,
행동하는 실제 삶도 아니다.
자연 만물은 말과 글의 관념이 없다.
말과 글의 관념이 없이도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간다.
관념이 없기에 굳이 머뭇거려 꾸미지 않고,
그 행동에 거칠 것이 없다.
반면, 인간은
말과 글이 없으면 생각을 나타낼 수 없고,
꿈마저도 꿀 수 없다.
언어의 한계는 생각의 한계가 되고,
삶과 꿈의 한계가 되고만다.
自然의 無限함에 대비해
인간의 道라는 관념이 갖는 有限함과
삶의 구현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간으로
老子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자연과 인생이 그 배움터였노라고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
나는 더욱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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