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形,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是以,
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
老子는 말했고,
나는 이렇게 들었다.
"자연 만물은 미와 추함의 구분이 없다.
구분하는 것은 오직 사람들 뿐이다.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니,
꾸민 아름다움(爲美)도 만들어졌다.
그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자연 만물은 선과 악의 구분이 없다.
구분하는 것은 오직 사람들 뿐이다.
사람들이 선하다고 부추기니,
꾸민 선(爲善)도 생겨났다.
그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그대도 알고 있으리라!
만물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를.
없으니 비로소 있고,
어려우니 쉬운 게 있으며,
긴 게 있으니 짧은 게 있고,
높은 게 있으니 낮은 게 있으며,
마음의 소리와 만물의 소리는
서로 어울리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르는 것을.
이에 따라서
자연 만물의 이치를 통해
인간의 이치(道)를 깨닫는 사람은
일을 함에 있어 굳이 꾸미지 않고,
말없이 행동으로 실천하더라.
만들되 말로 다하지 않고,
낳고도 소유하지 않으며,
베풀고도 자랑하지 않고,
이루고도 그 공을 쌓아두지 않더라.
쌓아두지 않으니, 사라질 것도 없더라.
머무르지 않으니, 떠날 일도 없더라."
*
'多多益善'이라고,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老子는 그게 아니라고 한다.
꾸미느니 차라리 없는게 낫다고 한다.
꾸미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고 한다.
老子가 가장 싫어하는 건 꾸밈인 것 같다.
老子가 말하는 無爲란 흔히 말하는 이른 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닐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 갈 수 있겠는가?
하되 굳이 꾸미지 않는 것일 것이다
사실
욕심이 아예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본적인 욕심 - 추우면 따뜻하게 입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 - 은
삶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욕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선(善)함도 있고 남을 위하는 마음도 있다.
그래서 노자는 욕심도 포용하여,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되,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살아가기를 말하나 보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가?
그러나 꾸미기만하고 부자연스럽게 살기도
또한 쉽지 않다.
이것이 인간이 갖는 한계이자
가능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老子는 희망을 갖고
그다음 道를 말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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