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나라 미얀마가 또다시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정치’의 의미를 사전을 통해 다시 살펴본다.
즉, ‘국민들이 인간답게 삶을 영위하도록 보호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권력을 잡고 행사함으로써 국가를 다스리는 수단’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목적과 수단이 조화를 이뤄야 올바른 정치일 것이다.
그런데 수단이 목적을 뒤 덮어 가려버리면 어떻게 될까?
예전에 업무 차 방문했던 양곤에서의 장면들을 주마등처럼 떠올린다.
그 때도 열대의 태양은 풍요로운 들판과 가난한 집 창가를 가리지 않고 고루 비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도 보이지 않는 것들에 뒤 덮여 가려진 상황이었다.
-양곤 착륙 비행기에서-
드넓은 들판에 파릇파릇한 논과, 추수하는 이웃 논과, 이제 막 모를 심는 그 이웃 논이 사이좋게 공존하던 곳. 무엇을 하든 배가 터지게 풍요로울 것만 같던 나라.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무표정한 여군(?)이 내 얼굴과 여권과 모니터를 반복해서 매의 눈으로 째려보았다.혹시 잘못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이 나라 맹방이라는 북한으로 끌려가는 게 아닌가 지레 걱정하게 했던 나라.
-공항 청사 문 밖에서-
갑자기 아이들이 하얀 이 드러내 웃으며 꼬질꼬질한 슬리퍼 발로 우르르 몰려왔다. 캐리어와 가방들을 빼앗더니 어느 차에 실으면 되느냐고 반짝이는 눈과 가냘픈 온몸으로 애처롭게 물었다. 일순간 당황했던 나도 이내 따라 웃던 나라.
-신선한 아침 먹거리는 길에서-
이른 아침 호텔 건너편, 바구니와 단도 찬 맨발의 남자가 가로수들을 쑥쑥 솟구쳐 올랐다. 이내 능숙한 솜씨로 열대과일들을 가득 담아 주르륵 내려 왔다. 슬리퍼 고쳐 신고, 바구니 메고 지고, 미국영사관 담 모퉁이 뽀빠이(?) 인형을 쓱 쳐다보곤 유유히 사라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던데, 이방인인 나만 내내 신선했던 나라.
-들판의 풍요와 빈곤 사이에서-
한없이 푸른 들판. 그 틈새에서 마주친 낡은 판자와 녹슨 함석 쪼가리로 얼기설기 엮은 헛간 같은 집들. 농사짓는 사람들이 사는 가정집이라고 했다. 햇볕은 어김없이 공평하게 숭숭 뚫린 판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얼마 안 되는 살림살이들을 영사기처럼 고루 비춰준다. 문간의 엄마 품에 안긴 아기는 콧물과 함께 젖을 빨고 있었다. 저 끝간 데 없는 풍요로운 들판을 일궈낸 주인공들은 왜 빈곤할 수밖에 없을까? 그런데도 어떻게 저토록 평온할 수 있을까? 갸우뚱했던 나라.
-최신 삼숑 은하수 태블릿과 알 유 오케이?-
들판을 한참 달려 도착한 또 다른 들판. 그 곳에 있는 국영기업체와의 미팅 시간.군인이기도 하다는 현지 임원은 최근 한국에서 공수했다며 나도 만져보지 못했던 최신 갤럭시 탭을 내밀었다. 그 안에 나열된 요청사항들을 설명하며 연신 어깨 으쓱 엄지 척 "코리아 넘버원! 알 유 오케이?"를 날렸다.
상대를 띄워 차마 거절하기 어렵게 만드는 노련한(?) 처세술 조차 악의 없게 여겨져 웃음 나오던 나라.
-길바닥도 보여주는 역(?)첨단 택시안에서-
굴러가는 게 신기한 수십 년은 된 듯한 도요다 택시 안. 손님 좌석 발치에 야구공만 한 구멍이 뚫렸다! 그런데, 유난히도 울퉁불퉁한 그들의 아스팔트 상태 확인이 아주 용이했다! 운전사 양반은 한 낮 더울 땐 바람도 들어와 더 시원하다고 너스레를 떨며 손님과 함께 웃어넘기던 나라.
-황금사원 언덕에서-
불탑의 나라에서도 가장 크고 빛난다는 쉐다곤 파고다. 무려 60,000kg의 황금으로 표면을 둘러쌌다는 탑 안에는 부처님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모셨다고 했다. 그 황금을 가난 구제에 썼다면 더 나았을까 어땠을까를 속으로만 생각해보게 하던 나라. 외국인에게 만 받는다는 입장료 우리 돈 약 12,000원이 그곳 사람들에겐 보탬을 줄거라 여겨 아깝지만은 않았던 나라.
-들판으로 이어지는 도시 외곽 가난한 사람들의 거리에서-
사람들이 길가에 앉아 이야기에 꽃을 피운다. 우리 일행을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아마도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이 없어 기다리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런데도 얼굴 표정들은 밝고 걱정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대부분 가난해도 대부분 구김살 없이 웃을 수 있는 나라가 이렇게 있었다니! 하며 감탄했던 나라.
만약에 황금사원 탑을 에워싼 황금을 모두 걷어내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 준다고 하면, 과연 가난한 사람들은 좋다고만 할까?
가난한 사람들은 황금 한 조각 대신에, 낮이나 밤이나 그 언제나 빛나서, 높은 곳 낮은 곳 그 어디서나 바라볼 수 있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 어느 때나 기대고 위로받을 수 있는 그 대상을 망설임 없이 선택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어느 길이든 그 나라 사람들 대다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를 나는 바란다.
그래서 그 사람들 대다수가 비록 부자이지 않아도, 그리고 장차 대다수가 부자가 되어서도, 대부분 서로 웃고 서로 위하는 행복한 나라로 오래도록 남아있어 주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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