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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시작이 있으되



 子曰 ,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논어 위정(爲政)편의 너무나 유명한 대목으로, 익히 아는 바와 같이 본문에 충실하면 다음과 같이 읽힌다.


 “공자 말씀하시기를

나는 열 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확고히 섰으며,

마흔에 의혹을 갖지 않았고,

쉰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에 귀가 순해졌고,

일흔에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내 어린 시절 공자는 위대한 성인(聖人)이시니 삶도 당연히 그러셨겠지…’로 읽혔다.

내 젊은 시절부터 그 동안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득한 거리감에 주로 그런데 나는?...’으로 읽혔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도 읽힌다.


 “제자 묻기를,

스승님! 사람은 일생을 어떻게 살아야 좋겠는지요? 


 공자 대답하시기를,

무릇 삶에는 각기 그 때가 있는 법, 내 살아온 경험으로는

십대 중반부터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가려 그 뜻을 세우도록 하고,

삼십 대부터는 그 뜻대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사십 대부터는 주위에 미혹되지 않고 그 뜻 굳건해지도록 애쓰고,

오십 대부터는 그 뜻 이루어지든 설혹 아니든 그대로 하늘의 뜻으로 받아드릴 줄도 알며,

육십 대부터는 날로 굳어지려는 사려와 판단을 순하게 해 남의 말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칠십 대부터는 그 뜻과 마음을 하나로 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함이

좋지 않겠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기 그 때에 맞는 시작이 있으되, 그 마무리는 공히 끝이 없지 않겠는가?

삶에서 배움과 깨달음은 그 끝이 없으므로


 제자 다시 묻기를,

스승님! 말씀하신 그 뜻은 어떻게 갖는 게 좋겠는지요?


 공자 다시 대답하시기를,

무릇 사람마다 품는 그 뜻은 다 다를 것이고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변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엔 공히 어질고(), 의로우며(), 예의 바르고(), 지혜로우며(), 믿음이 배어 있되(),

무엇보다 원숙해 질수록 조화로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  



 한마디로,

시작이 있으되 그 끝은 없음을 잊지 말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조화롭게 살라는 말씀으로 받아드리고 싶다.



[사진] 나무 두 그루가 어찌나 조화롭게 서있던지십여 년 전, 오며 가며 바라보던 그 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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