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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나이 들어서야 읽어 보는 論語



나이 들어서야 읽어 보는 論語

 

하루 다섯 번 버스가 지나다니는 강원도 원주의 남쪽 변두리 촌 동네에 묻혀서, 있는 듯 없는 듯 은퇴자(隱退者)의 삶을 살아가는 나. 버스 대 여섯 정류장 거리인 면 소재지에 아주 작지만 매우 큰 『중천철학도서관』이 있다. 우리나라 동양 철학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원주 출신 중천 김충열(中天金忠列, 1931~2008) 선생의 업적을 기려 2015 10월에 세워졌다. 여러 차례 드나들다 보니 장서(藏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동양 철학 쪽에도 자연히 눈길이 가게 되었다.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古事)처럼 비유가 맞는지 모르지만 - 내가 나이 들어 새삼 論語를 읽어 보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공자 말씀대로 하면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思慮)와 판단(判斷)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받아들여야 할 내 나이 대() 이다. 하지만 정작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각이 굳어져 선입견을 앞세우는 경우가 다반사(茶飯事)이다. 아마도 공자께서는 나의 이런 경향을 두루 염려하시어 이 나이 대에는 제발 남의 말도 귀담아 들어 받아들이기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훈계를 남기신 게 아닐까?

 

막상 論語 관련 책자들을 살펴보니 원문 옆에 한글로 풀어 적어 놓았는데, 내가 모자라다 보니 문맥상 모호하거나 그 뜻이 잘 와 닿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인지 펴낸 이 나름의 주관적 관점에서 기술한 책들도 눈에 띄었다. 원문을 좀 더 이해하고자 한자사전(漢子事典)도 뒤지고 관련 자료들도 찾아보고 하다가 보니, 내 입장에서 읽고 내 나름대로 느끼는 재미도 있었다.

 

論語 제목을 접하며 새삼 떠오른 의문 한 가지.

孟子, 荀子 그리고 老子나 莊子처럼 論語를 왜 孔子라 하지 않았을까?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아보니 그건 공자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과 제후(諸侯)들 간에 상호 삶의 길을 논()한 어()록이기 때문이라 한다. 제목에서부터 공자의 화(), 조화로움을 중시하는 뜻이 담겨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출처]http://m.blog.naver.com/vitamintrees/22070984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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