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윤동주(1917-1945)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에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까지
저녁에서 아침까지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요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인제(麟蹄)
박인환(1926-1956)
봄이면 진달래가 피었고
설악산 눈이 녹으면
천렵 가던 시절도
이젠 추억.
아무도 모르는 산간벽촌에
나는 자라서
고향을 생각하며 지금 시를 쓰는
사나이
나의 기묘한 꿈이라 할까
부질없고나.
그곳은
전란으로 폐허가 된 도읍
인간의 이름이 남지 않은 토지
하늘엔 구름이 없고
나는 삭풍 속에서 울었다
어느 곳에 태어났으며
우리 조상들에게 무슨 죄가 있던가.
눈이여
옛날 시몽의 얼굴을 곱게 덮어 준
눈이여
너에게는 정서와 사랑이 있었다 하더라.
나의 가난한 고장
인제
봄이여
빨리 오거라.
『작가의 집으로 ; 시간이 흘러도 반짝거리는 감동의 문장을 찾아서 – 이진이 글/그림』 중에서
한 해를 길로 치면 겨울길이 제일 긴 것 같다.
동지가 코앞이지만 겨울길은 아직 절반도 못 걸은 것 같다.
눈 소식이 있던데 눈이 오고 다시 녹다 보면 봄도 오겠지.
한 동양화가가 작가의 집(시인과 소설가의 문학관)들을 방문한 기행문이다.
나는 서울에 가면 도봉산 입구 김수영 문학관을 한번 들러야지 마음만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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