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우주
우주론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과 사고방식이 극적으로 펼쳐짐에 따라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물리학자들은 우리 우주가 터무니없이 다양한 속성을 갖고 있는 엄청나게 많은 우주 중 하나에 불과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 중 일부는 그저 우주의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우연의 결과일 뿐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최근 많은 물리학자가 생각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우주가 아니다. 우리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우주 중 한 우주에 살고 있다. 우연히 만들어진 우주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적으로 계산해 낼 수 없는 우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우주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또는 이 우주들이 시간상으로 동시에 존재하는지 여부를 말하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리학의 새로운 이론들이 예측하는 바에 따르면, 수많은 우주가 아주 다른 속성을 띠고 있는 것은 거의 분명하다. 어떤 우주는 우리 우주처럼 항성과 은하계를 갖고 있을 테지만, 그렇지 못한 우주도 있다. 어떤 우주는 크기가 한정되어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우주는 무한할 수도 있다. 어떤 우주는 5차원 또는 17차원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물리학자들은 이런 우주를 통틀어 다중우주(多衆宇宙 multiverse)라고 부른다.
[사진출처] http://science.howstuffworks.com/what-is-the-multiverse.htm
이러한 다중우주에서는 생명의 출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된다. 서로 속성이 다른 엄청나게 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면, 예를 들어 우리 우주보다 핵력(核力)이 훨씬 강한 우주도 있고, 훨씬 더 약한 우주도 있다면 이런 수많은 우주 중 일부는 생명 출현을 허용할 것이고, 일부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양하게 계산을 해본 결과에 의하면, 우리우주의 기본 매개 변수 중 일부의 값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크거나 작았어도 생명이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핵력이 지금보다 몇 퍼센트만 더 강했더라면 유아기 우주의 모든 수소원자들이 다른 수소원자와 융합하여 헬륨이 되는 바람에 수소원자는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수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물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생명의 출현에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생물학자는 물을 필수요소라 믿고 있다. 반면 핵력이 지금보다 크게 약했다면 생명 탄생에 필요한 복잡한 원자들이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만약 중력의 강도와 전자기력의 강도 사이의 관계가 지금과 비슷하지 않았다면, 우주에는 생명을 뒷받침하는 화학원소를 초신성(超新星, supernova) 폭발을 통해 우주로 분출하는 항성(恒星, star)도, 행성(行星, planet)을 거느리는 항성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생명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두 종류의 항성이 모두 필요하다.
한편, 대부분의 과학자가 동의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만약 우리 우주의 암흑에너지 양이 실제 값과 조금만 달랐어도 생명은 결코 등장하지 못했으리라는 점이다. 암흑에너지 양이 실제보다 조금 더 컸다면 우주 팽창 속도가 너무 빨라 유아기 우주에 들어 있던 물질이 중력의 작용으로 뭉쳐 항성을 형성할 수 없었을 테고, 그러면 항성 속에서 복잡한 원자들이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암흑에너지 양이 더 작아서 음수 값이 되었다면, 우주의 팽창 속도가 급격히 줄어 가장 단순한 형태의 원자가 미처 형성되기도 전에 다시 붕괴하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 우주는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암흑에너지 양 중에서 하필이면 생명을 허용하는 실낱같이 좁은 영역에 해당하는 엄청나게 작은 값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는 생명이 출현하려면 액체 상태의 물이 있어야 한다거나, 특정 생화학적 과정이 일어나려면 산소가 있어야 한다는 등의 가정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과연 지금과 같은 형태의 우주와 우주를 구성하는 원자 자체가 존재할 수 있는지를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어째서 우리 우주가 이런 값을 갖게끔 미세조정이 일어났는가? 오늘날 많은 물리학자는 그 해답이 바로 다중우주에 있다고 믿는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우주가 존재하며, 그 각각의 우주는 서로 다른 암흑에너지 양을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 우주는 생명의 출현을 허용하는 작은 암흑에너지 값을 가진 우주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우리 우주가 그런 우주임을 증명한다. 우리는 우연히 탄생한 존재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주 복권 중에서 우리는 우연하게도 생명을 허용하는 우주 복권에 당첨된 것이다. 하기야 우리가 그 복권을 뽑아 들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서 그 복권을 뽑을 확률이 얼마나 될지 곰곰이 생각하는 우리도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어느 날 왜 세상이 완전히 물로 채워져 있는지 궁금증을 품기 시작한 똑똑한 물고기 집단이 있었다. 그 물고기 중 상당수는 이론가였고, 세상이 물로 채워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를 증명해 보이려고 했다. 이들은 여러 해에 걸쳐 이 과제에 집중했지만, 자신들의 주장을 도저히 입증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 늙은 주름투성이 물고기 집단이 어쩌면 자신들이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세운다. 이들은 짐작하건대 다른 수많은 세계가 존재하며, 거기에는 완전히 건조한 세계부터 완전히 물로 채워진 세계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다양한 세계가 존재할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일부 물고기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 못해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또 일부 물고기는 이런 설명에 안도감을 느꼈다. 어떤 물고기는 평생에 걸친 고민이 다 쓸데없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부 물고기는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추측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 우주가 우연의 결과물이며, 계산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우주를 관찰할 수 있는 방법도, 그 존재를 입증할 방법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관찰한 세상과 머릿속에서 추론한 세상을 설명하려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믿어야만 한다.
신학자들은 입증되지 않은 것을 믿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사실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믿어야 하는 다중우주론은 과학의 오랜 전통과 심각하게 충돌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중우주를 예측한 이론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서 검증 가능한 다른 예측을 내놓기를 바라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수많은 다른 우주는 계속 추측의 영역에 머물 것이다.
엘런 라이트먼 著
『엑시덴탈 유니버스(The Accidental Universe) –우리가 몰랐던 삶을 움직이는 모든 순간의 우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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