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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부질없는 생각들

 

 

子曰, 子欲無言, (자왈, 자욕무언,)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자공왈, 자여불언, 즉소자하술언?)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자왈, 천하언재? 사시행언, 백물생언, 천하언재?)

 

『論語』 <楊貨> 17.19

 

공자 말씀하시길, “나는 아무 말도 안 하려 한다.”

이에 자공이 묻기를, “말씀하지 않으시면 저희는 무엇을 기록합니까?”

공자 대답하시길,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말이 없어도 사계절은 저절로 운행되고, 만물은 생겨난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같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이해하기도 한다.

김시천 著 『논어, 학자들의 수다: 사람을 읽다』 子貢 편에서는 위의 공자 말씀을 두고 세 갈래의 이해가 있음을 지적한다. ,

 

전통 유학자들은 자신의 뜻을 행동으로 다 보여줬으니,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라고 이해했고,

新유학자(性理學者)들은 천지가 운행하고 만물이 화육하는 과정에서 理致가 드러나기 때문에 구태여 말로 그것을 표현 할 필요가 없다.” 라고 이해했으며,

일부 연구학자들은 자공의 기록 언급 부분을 두고 흔히 아는 것처럼 논어가 수 세기 후 책으로 논찬(論纂)되어 세상에 툭 튀어 나온 게 아니라, 논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 뿐 당대에 이미 대부분 존재하지 않았겠느냐?” 라며 주목했다고 한다.

 

아닌 말로 어쩌면 시도 때도 없이 눈 앞의 시시콜콜한 것까지 묻곤 일거수일투족 다 받아 적을 태세로 답을 고대하는 열성 제자들에게, 부디 나를 넘어서 스스로의 눈으로 보다 넓고 크고 멀리 보라고 일갈하신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 어느 방향으로 이해하든 중요한 것은 받아들이는 이의 몫일 것이다. 읽는 이 나름대로 생각의 나래를 펼쳐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이 논어를 읽는 가장 큰 재미요 매력이 아닐까 한다.

 

 

한편 생각해 보면,

오늘날처럼 말과 글이 넘쳐나는 적이 또 있었을까?

다양한 소통 수단은 물론, 속도 면에서도 그러하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이 나 어렸을 적과도 도저히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

그렇게 다양하고 빠른 만큼 소통은 잘되고 있는 걸까?

그만큼 의미 있는 말과 가치 있는 글이 넘쳐나는 걸까?

그래서 지금 우리들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만족하고 행복한 걸까?

 

혹시 소통이 잘 안돼가고 있기에 말과 글이

굳이 필요치 않은 물건들처럼 넘쳐나는 건 아닐까?

남 얘기 할 게 아니라 내가 하는 말과 글은

과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걸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사진출처]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rjpR&articleno=16187&btype=0&navi=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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