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 세상 만물의 기원은 무엇일까?
우주는 크다. 하지만 우주의 기원에 관한 빅뱅 이론이 옳다면, 이 거대한 우주도 한때는 작았다고 한다. 어느 시점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약 138억 년 전에 빅뱅이라는 사건이 일어나 물질, 에너지, 시간과 공간이 생겨났다고 한다.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바꿔 말하면 세상 만물의 기원은 대체 무엇일까?
2. 우주에는 시작이 있는가?
이것은 기원에 관한 가장 본질적인 미스터리다.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대답은 딱 하나, ‘신이 그랬다’ 밖에 없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우주가 무한하고 영원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1929년 그렇지만은 않다는 첫 번째 단서가 등장했다. ‘에드윈 허블’은 은하들이 폭발 후 흩어지는 파편처럼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으로 다음과 같은 논리적 결론이 뒤따랐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현재보다 더 작았으리라는 것이었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이 팽창 과정을 거꾸로 돌려서 논리적으로는 합당하지만 이상한 또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바로 ‘우주에는 시작이 있어야 한다.’ 고…
3. 궁극의 시작은 있는가?
궁극의 시간이 존재할 것이라는 일부 천문학자들의 개념에 반대해 ‘프레드 호일’ 등 기존의 과학자들은 1948년 ‘정상 우주론(steady state universe)’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주는 영원히 존재해 왔고, 항상 똑 같은 모양을 가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빅뱅’이란 표현은 이들이 빈정대며 무시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었다.
어떤 과학자들은 ‘뱅(bang)’ 이 아닌, 시작도 끝도 없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바운스(bounce)’의 한 과정이라고도 주장한다.
또 다른 과학자들은 이 ‘뱅’이 수 많은 ‘뱅’ 중에 하나라고도 주장했다. 이러한 ‘다중우주론(multiverse theory)’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부글거리는 거품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4. 우주배경복사는 빅뱅의 잔재인가?
1965년 미국의 ‘펜지어스’와 ‘윌슨’은 전파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하던 중 빅뱅 이론에 유리한, 모든 공간에 스며들어 있는 희미한 복사(radiation)를 우연히 발견했다. 이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는 지금보다 훨씬 더 뜨겁고 고밀도였던 우주가 남긴 ‘잔광(afterglow)’으로 여겨졌다.
5. 우주의 크기가 무한히 작고, 밀도는 무한히 높았던 때가 있었을까?
이어서 이런 관찰을 뒷받침해주는 이론도 등장했다. ‘스티븐 호킹’과 ‘로저 펜로즈’는 일반상대성이론이 옳다면 밀도와 시공간 곡률이 무한한 특이점(singularity)이 존재하게 되고, 이곳에서 우주의 크기가 무한히 작고, 밀도는 무한히 높았던 때, 즉 시간 그 자체가 시작되던 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6. 빅뱅 순간의 실체는 명확하게 규명되었는가?
현재는 주류 과학으로 자리 잡게 된 빅뱅 우주론을 따르는 과학자들은 우주가 급팽창(inflation)하던 시기인 최초 항성의 탄생 등 우주의 기원 이후 찰나의 순간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우주 진화를 추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빅뱅에 의해 창조가 일어났다고 하는 순간의 실체는 아직도 추측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 그 시점에서는 실체를 설명하는 물리학적 이론들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진척을 이루려면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을 융합시킬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학문적 축적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빅뱅론 과학자들은 빅뱅 이론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까다로운 의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에 대해 몇 가지 개념을 가지고 있다.
7. 어떻게 무(無)에서 유(有)가 나올 수 있을까?
엉뚱하지만 이것은 매우 합리적인 질문이다. 기초물리학에 따르면 우주가 존재할 확률이 놀라울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서는 무질서, 즉 엔트로피는 시간에 따라 언제나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엔트로피는 한 계(系)의 요소들을 그 전체적인 모양은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재배열할 수 있는 방법의 가짓수를 측정한 값이다.
예를 들어, 뜨거운 기체 안에 들어 있는 분자들은 전체적인 온도와 압력은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재배열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기체는 고 엔트로피 계에 속한다. 반면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이지 않으면서 그 생명체의 분자를 대량으로 재배열하기는 힘들다. 인간은 저 엔트로피 계에 속한다.
이 논리를 따르면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는 가장 높은 엔트로피 상태에 해당한다. 아무리 뒤섞어 놓아도 무(無)는 여전히 무(無)이기 때문이다.
이 법칙만 놓고 보면 어떻게 이미 가장 높은 엔트로피 상태에 도달한 무(無)가 우주는 고사하고, 다른 무언가(有)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엔트로피는 이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다. 또 다른 부분이 있다. 바로 물리학자들이 대칭(symmetry)이라고 부르는 성질이다. 물리학에서는 무언가를 대상으로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전과 후가 똑같이 보인다면 그 대상은 ‘대칭’이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무(無)는 완벽한 대칭이다. 거기에 무엇을 하든 무(無)는 여전히 무(無)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자들은 대칭은 결국 깨지기 마련이고, 대칭이 깨질 때는 우주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양자론에서는 절대적인 진공(emptiness)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공의 완벽한 대칭은 그대로 지속되기에는 너무 완벽하기에 존재했다가 사라지며, 끓어오르는 소립자들에 의해 붕괴되고 만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직관과 어긋나는 결론이 나온다. 즉, 엔트로피의 법칙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보다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유(有)의 상태가 좀 더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세상 만물은 그저 ‘양자 진공의 들뜸(excitation of quantum vacuum)’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우주 그 자체의 기원을 정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사실이라면 빅뱅은 무(無)가 자연스러운 일을 한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양자요동(quantum fluctuation)’으로 인해 우주 전체가 갑자기 짠하고 존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8. 시간과 공간의 바깥은 존재하는가?
그러면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고, 이런 상황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느냐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안타깝게도 이 시점에서는 무언가의 이전이라는 상식적 개념이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그보다 더 까다로운 의문도 뒤따른다. 이런 창조 과정을 이해하려면 물리법칙의 정당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 이미 그 법칙이 존재하고 있어야 했다는 말이 된다.
어떻게 물리법칙이 자신을 존재하게 만든 원인도 없이 시간과 공간의 바깥에 존재할 수 있을까? 바꿔 말하면 세상이 무(無)가 아니라 유(有)인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9. 구분할 수 있을까? 유(有)를 무(無)로부터…
사실은 구분할 수 없다. 둘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자론은 무(無)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무(無)는 항상 유(有)를 만들어 내고, 우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사실 이것으로 빅뱅을 설명할 수도 있다. 음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중력을 포함해서 양의 에너지까지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를 더하면 그 값은 0이 나온다. 우주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바로 무(無)이다.
그레이엄 로턴 저 / 스티븐 호킹 추천 - 『거의 모든 것의 기원』 중에서
The origin of (almost) everything,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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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도 모를 “무(無)는 항상 유(有)를 만들어 내고, 우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부분을 읽으며, 불현듯 불교의 경전인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경구가 떠오른다.
그 뜻은 “물질적인 세계(色)와 실체가 없는 공(空)의 세계가 다르지 않다.”라고 들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범어(梵語)의 원문 해설은,
“이 세상에 있어 물질적 현상에는 실체가 없는 것이며, 실체가 없기 때문에 바로 물질적 현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실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물질적 현상을 떠나 있지는 않다. 또, 물질적 현상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부터 떠나서 물질적 현상인 것이 아니다. 이리하여 물질적 현상이란 실체가 없는 것이다. 대개 실체가 없다는 것은 물질적 현상인 것이다.”라는 알고도 모를 말로 쓰여 있었다.
신라의 원측(圓測)스님은 이 알고도 모를 ‘색즉시공론’에 관하여 색과 공이 하나인가 다른 것인가를 밝히면서 “만약 하나라고 하면 하나라는 집착에 빠지게 되고 다르다고 하면 다르다는 집착에 빠지게 되며, 하나이면서 다른 것이라고 하면 서로 위배되는 것이 되고, 하나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라고 하면 말 그대로 공론(空論)에 그치게 된다. 따라서, 이 경구의 가르침은 색이나 공에 대한 분별과 집착을 떠나 곧바로 그 실체를 꿰뚫어 보라는 데 있다.”라고 설(說)하였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알수록 모르는 것도 증폭되는 세상 만물의 기원에 대한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내 눈앞에 펼쳐진 세상 일에 대해서 분별과 집착을 떠나 곧바로 그 실체를 꿰뚫어 보고자 하는 자세의 삶이 세상 만물에게도 보탬이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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