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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칼라니티 – 숨결이 바람 될 때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세월은 육신을 쓰러뜨리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브루크 폴크 그레빌 <카엘 리카 소네트 83> 중에서

 

 

P19

 나는 CT 정밀검사 결과를 휙휙 넘겼다. 진단은 명확했다. 무수한 종양이 폐를 덮고 있었다. 척추는 변형되었고 간엽 전체가 없어졌다. 암이 넓게 전이되어 있었다. 나는 신경외과 레지던트 마지막 해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난 6년 동안 이런 정밀검사 결과를 수 없이 검토했다. 혹시나 환자에게 도움이 될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하지만 이번 검사 결과는 이전과 다른 의미를 지녔다. 그 사진은 내 것이었다.

 

p135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는 의사들이 있다.

의사 선생님이 나한테 6개월 남았다고 했어요.”

대체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누가 그런 수치를 알려주는 건지 같은 의사인 나도 너무나 의아했다.

 

 병명을 들으면 대부분의 환자는 침묵을 지킨다. ‘patient’라는 단어의 초기 뜻 중 하나는 불평 없이 곤경을 견디는 자이다.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건 충격 때문이건 보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사인 나는 보통 환자의 손을 잡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곧바로 강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간혹 있다. 대개는 환자 본인보다 배우자이다.

우리는 싸워서 이겨낼 거예요,선생님.”

그들은 기도에서부터 재산, 약초, 줄기세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에 기댄다. 어쨌든 수술에 직면할 때는 싸우겠다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P181

 희망(hope)’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영어에 등장한 건 약 1,000년 전으로, 확신과 소망을 결합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소망하는 것()과 확신하는 것(죽음)은 달랐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희망의 진짜 의미는 헛된 소망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의학 통계는 평균 생존 기간 같은 수치를 나타낼 뿐 아니라, 신뢰 수준, 신뢰 구간, 신뢰 한계 같은 도구들을 이용해 수치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도 측정한다. 그렇다면 통계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여전히 가능성 있는 결과, 95퍼센트로 측정된 신뢰 구간을 극복하고 생존할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 이것이 내게는 희망이란 것일까?

우리는 과연 생존 곡선을 패배’, ‘비관적’, ‘현실적’, ‘희망적’, ‘망상등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을까? 숫자는 그저 숫자가 아니던가? 우리는 모든 환자의 생존 확률이 평균 이상이라는 희망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통계 자료와 나의 관계는 내가 폐암 환자가 되자마자 달라져 버렸다.

 

P214

 병을 앓으면서 겪게 되는 종잡을 수 없는 건 가치관이 끊임없이 바뀐다는 것이다. 환자가 되면 자신에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려고 계속 애를 쓰게 된다. … 죽음은 단 한 번 있는 일이지만,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건 계속 지속되는 과정이다.

 

 나는 문득 내 슬픔의 5단계(부정 분노 협상 우울 - 수용)를 이미 다 겪었지만 역순으로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죽음을 맞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불만도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였다. 나는 이미 준비된 상태였다. 그런데 그렇게 빨리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우울해졌다. 분명 희소식이었지만 혼란스럽고 기이할 정도로 맥이 빠졌다.

 

 중병에 걸리면 삶의 윤곽이 아주 분명해진다. 나는 내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은 그대로였지만 인생 계획을 짜는 능력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됐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만 하면 앞으로 할 일은 명백해진다. 만약 석 달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1년이라면 지금 쓰고 있는 이 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다. 10년이라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것이다. 우리는 한 번에 하루씩 살 수 있을 뿐이라는 진리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하루를 가지고 난 대체 뭘 해야 할까?

 

P217

 폐암 진단을 받은 지 9개월째. 그간의 치료로 암세포가 많이 진정되어 병세가 안정적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끝내려는 마음에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까지 수술했다. 몸은 크게 축나고 있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밥 먹을 힘조차 없었다. 나는 타이레놀과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 구토 방지제의 양을 서서히 늘려 갔다. 죽은 종양이 폐에 남긴 상처 때문인지 시도 때도 없이 기침이 나왔다.

 

p231

 나는 나의 CT촬영 영상을 되돌려 다시 자세히 살폈다.

거기에 그것이 있었다. 새로운 커다란 종양이 폐의 우중엽을 채우고 있었다. 마치 지평선을 막 벗어난 보름달 같은 놈이. 예전 촬영 결과를 다시 보니, 새로 생긴 종양의 희미한 흔적을 알아볼 수 있었다. 보일 듯 말 듯 유령 같았던 조짐이 이제 뚜렷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P253

 암 진단을 받은 뒤로 체중이 18킬로그램 이상 줄었고,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와 같은 몸무게가 되고 말았다. 머리카락 역시 숱이 엄청나게 줄었다. 나는 다시 깨어나 세상을 민감하게 의식하게 되었지만, 형편없이 시들어버렸다. 피골이 상접해서 마치 살아있는 엑스레이 사진 같았다.

 

P257

 나는 간이침대에 누워 아내에게 미소 지으며 아내의 배가 부풀어 오르는 걸 지켜봤다. 그리고 아내가 마지막으로 힘을 주자 우리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한쪽 팔로는 딸아이의 무게를 느끼며 다른 팔로 아내의 손을 잡고 있으니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내 몸의 암세포는 여전히 죽어가거나 다시 자라고 있을 것이다. 내 앞에 펼쳐진 넓은 지평선에서 나는 공허한 황무지가 아니라 그보다 더 단순한 어떤 것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계속 글을 써내려 가야 할 빈 페이지였다.

 

P259

 그래도 우리 집에는 활기가 넘쳐흐른다.

하루가 다르게 딸 케이티는 성장하고 있다. 처음으로 뭔가를 움켜잡고, 처음으로 미소 짓고,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린다.

 

 시간은 이제 나에게 양날의 검과도 같다. 심하게 축난 몸 상태는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암이 재발하게 될 테고, 그러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P260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팽창한다면, 나 같이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시간은 수축될까? 분명 그렇다. 내가 보내는 하루는 엄청나게 짧아졌다.

 

 오늘과 내일을 거의 구분할 수 없게 되자,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시간(time)’이라는 단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 “지금 시각(time)은 두 시 사십오 분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나는 힘든 시간(time)을 보내고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요즘의 나는 후자처럼 느껴진다. 나는 무기력해졌고, 더 너그러워진 것 같다.

 

P262

 모든 사람이 삶의 유한함에 굴복한다. 이런 과거 완료 상태에 도달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대부분의 야망은 성취되거나 버려졌다. 어느 쪽이든 그 야망은 과거의 것이다. 미래는 이제 인생의 목표를 향해 놓인 사다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는 현재가 되어버렸다. , 지위, 그 밖의 모든 허영이 시시해 보인다. 바람을 좇는 것 같으니 말이다.

 

P263

 하지만 절대 미래를 빼앗기지 않을 한 가지가 있다. 우리 딸 케이티다. 내 목숨은 사라지겠지만 말이나 글은 그렇지 않다. 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나 남기고픈 글은 단 하나뿐이다.

너는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너로 인해 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이 책의 부제는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다.

그는 스스로의 호흡만으로는 필요한 산소 공급이 불가능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결연히 삽관을 통한 인공호흡을 거부하고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육신은 사라지지만 글은 남는다. 글 속의 핵심인 마음은 남는다. 그것을 우리는 영혼이라 부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