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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살다 – 아서 프랭크

 

 나는 목숨을 위태롭게 한 질병을 두 번 겪었다. 서른아홉에는 심장마비, 마흔에는 암이었다. 지금은 많이 회복된 상태다. 그렇다면 왜 굳이 과거로 돌아가서 이 병들에 관해 쓰고 있는 걸까? 위험한 기회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질병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잡으려면 질병과 함께 머물러야 하며 질병을 통과하면서 배운 것을 나눠야 한다.

 

 심각한 질병은 우리를 삶의 경계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삶이 어디에서 끝나버릴 수도 있는지 본다. 경계에서 삶을 조망하면서 우리는 삶의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보도록 허락받는다. 여전히 살아있기는 하지만 일상에서는 멀어져 있기에 마침내 멈춰 서서 생각해볼 수 있다. 왜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살아왔는가? 미래가 있을 수 있다면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질병은 삶의 일부를 앗아가지만 기회 또한 준다. 우리는 그저 오랫동안 살아왔던 대로 계속 사는 대신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병이 가져오는 위험 중 가장 명백한 위험은 경계를 넘어가 죽는 것이다. 이 위험이 제일 중요하며, 또 언젠가는 이 위험을 피할 수 없는 날이 오고야 만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다른 위험이 있는데, 바로 질병에 집착하게 되는 위험이다. 질병을 자신과 마주하지 않고 또 다른 이들과 마주하지 않으면서 뒷걸음질 치는 핑계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질병은 계속 매달리고 있을 만한 무엇이 아니다. (할 수 있으면) 그저 회복하면 된다. 그리고 회복의 가치는 새로 얻게 될 삶이 어떤 모습일지 얼마나 알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회복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내 경우에 심장마비 이후의 회복이란 아팠던 경험 전체를 뒤에 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건강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세계로 돌아가고 싶었다. 반면 암은 이런 식으로 회복할 수 없었다. 아직도 진찰을 받을 때마다, 보험 서류를 작성할 때마다 암에는 차도가 있을 뿐이지 ‘완치’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하지만 암이라는 질환의 생리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암에 대한 경험이 내게 미친 영향이다. 암을 앓고 난 후에는 예전에 살던 삶으로 전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변화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도 비싼 값을 치렀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고통을 맛보았고, 특히 젊은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고통도 맛보았다. 삶을 이전과 같은 가치관으로 계속할 수는 없었다. 예전의 나를 회복하기보다는 앞으로 될 수 있는 다른 나를 발견하고 싶었다. 그리고 글쓰기는 이러한 다른 나를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이다.

 

 회복이 질병의 이상적인 결말이라고 보는 견해에는 문제가 있다. 어떤 이들은 회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받던 암 치료가 끝나자마자 아내와 나는 장모님이 입원한 암 병동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고, 장모님의 경우 결말은 쉰아홉 살의 죽음이었다. 만일 회복이 이상적으로 여겨진다면 계속 만성으로 남는 질병이나 죽음으로 결말 나는 질병을 앓는 사람들의 경험에서 어떻게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답은 회복보다는 ‘새롭게 되기’에 초점을 맞추는 일인 듯하다. 계속 아프다 해도, 심지어 죽어간다 해도 질병 안에는 새롭게 될 기회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질병이 제공하는 기회를 붙잡으려면 질병을 적극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질병에 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며 어떤 사람들, 곧 나 같은 사람들은 질병에 관해 글을 써야 한다. 생각하고 말하고 씀으로써 우리는 개인들이자 한 사회로써 질병을 받아들일 수 있다. 또 그때야 질병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님을 배울 수 있다. 아프다는 것은 그저 다른 방식의 삶이고, 질병을 제대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 전과는 다르게 살게 된다. 질병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도 자명하지도 않은 이유는 질병이 우리를 그 전과는 다르게 살도록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질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질병의 경험 안으로 들어가 질병이 열어 보이는 가능성을 증언하고 싶지만 아프다는 것에 집착하고 싶지는 않다. 기회를 붙잡으려면 질병을 제대로 경험한 다음 떠나보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가야 한다.

 

 

 심각한 질병은 삶의 모든 면을 건드린다. 아픈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지어 놓은 병원과 의료시설들은 환상을 만들어 왔다. 아픈 사람을 건강한 사람들에게서 떨어뜨려 가둬놓음으로써 질병 자체도 아픈 사람의 삶 안에 가둬놓을 수 있다는 환상이다. 이러한 환상은 위험하다. 아프게 되면 관계에도 직업에도 변화가 온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삶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다르게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무섭다. 심하게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번의 경험에서 나는 변화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압도되었다.

 

 그리하여 이 글은 질병에 압도되기 전의 젊은 나에게, 몇 년 더 젊을 뿐이지만 경험의 심연 건너편에 있는 나에게 쓰는 것이기도 하다.

‘보르헤스’의 단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강가에 앉아 있던 나이 든 작가에게 젊은 시절의 자신이 걸어온다. 둘은 서로를 알아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젊은이는 나이 든 작가가 시력을 거의 잃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노인은 별로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며 위로한다. 

젊은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나 장차 어떤 병력을 갖게 될지 듣는다면 젊은 나는 ‘보르헤스’의 이야기 속 젊은이보다도 훨씬 더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이제 이어질 글에서 아프기 전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두려울 수밖에 없겠지만 두려움에 차서 인생을 보낸다면 바보 같은 일일 거라고, 미래의 너는 고통받고 많은 것을 잃게 되겠지만 고통과 상실은 삶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고.

 

“많은 것을 잃겠지만 그만큼 기회가 올 겁니다. 관계들은 더 가까워지고, 삶은 가슴 저미도록 더 깊어지고, 가치는 더 명료해질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이제 자신의 일부가 아니게 된 것들을 애도할 자격이 있지만, 슬퍼만 하다가 당신이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느끼는 감각이 흐려져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위험한 기회에 올라탄 것입니다. 운명을 저주하지 말고, 다만 당신 앞에서 열리는 가능성을 보기 바랍니다.” 

 

-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위험한 기회, 질병' 중에서-

 

 

*

아프기 전부터 한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그런데 아프고 나니 나중이 지금으로 앞당겨졌다. 나를 찾아온 질병이 나에게 부여한 또 다른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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