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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물리학의 대답

 

 

  1.

 느끼고 판단하고 울고 웃는 존재로서 인간인 우리는 현대의 물리학이 펼쳐 보여주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우주 벽화 속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을까요? 세상이 하루살이처럼 금방 사라지는 공간 양자와 물질 양자의 무리이자, 공간과 기본 입자를 끼워 맞추는 거대한 퍼즐 게임이라면 우리는 무엇일까요?

 

 우리 역시 그저 양자와 입자로만 만들어졌을까요? 그렇다면 각자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스스로를 나 자신이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꿈, 우리의 감정, 우리의 지식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요? 이 거대하고 찬란한 세상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일까요? …

 

 

2.

 인간 존재인 우리는 이 세상을 바라보는 주체이고, 이제까지 스스로가 기록한 현실이라는 사진의 공동작가입니다. … 그러나 우리는 현재로서는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무한한, 우주라는 세상 밖에서의 관찰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 속에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우리도 산 위의 소나무나 은하 속의 별들이 교환하는 것과 똑같은 원자와 광신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우리의 지식이 조금씩 성장하면서 우리의 존재와 우주의 극히 일부의 사실들이 점차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때는 우리가 우주 중심인 지구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동물이나 식물계 통과는 별개의 종류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도 우리 주변에 있는 다른 모든 생명체와 똑같은 조상으로부터 계승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나비와 낙엽송 같은 동식물과 조상이 같습니다. …

 

 

3.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빅뱅이나 공간의 구조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마치 새벽의 첫 햇살을 받으며 사바나의 먼지 속에서 영양의 흔적을 찾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 눈으로는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찾을 수 있는 흔적을 추론해보기 위해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인간이 언제라도 실수할 수 있기에 새로운 흔적이 나타나면 생각을 바꿀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 인간이 현명하다면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새로운 답을 찾을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학입니다. …

 

 

4.

 인간의 행동이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뿐이라면, 우리가 자유롭게 결정을 내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우리의 자율성과,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주재하는 자연법칙의 엄정함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는 걸까요? 혹시 우리의 내면에 자연의 규칙을 왜곡하여 밀어내고, 그 자리를 자유로운 생각으로 대체하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요?

 

 적어도 과학적 관점에서는 자연의 규칙에서 벗어나도록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내면에 자연의 규칙을 위반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이미 오래전에 우리는 그것을 알아냈을 것입니다. …

 

 

5.

 우리가 자유롭다고 말할 때 정말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동들이 우리 스스로의 내면과 뇌가 제한하는 명령을 통해 이루어지고, 외부의 그 무엇인가에 의해 강요받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유롭다는 것이 우리의 행동이 자연의 법칙에 의해 제한되지 않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우리의 뇌 안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법칙에 의해 제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유로운 결정은 우리 뇌에 있는 수십억 개의 신경세포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결과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 신경세포들의 상호작용이 우리의 판단을 정의할 때 자유로운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6.

 윤리와 열정, 사랑은 복합적인 현실이고, … 눈물과 웃음, 감사와 이타주의, 믿음과 배신, 우리를 번뇌하게 하는 과거와 평온함이 우리 눈앞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우리가 함께 구축한 공통의 지식이 교차하는 풍요로운 연결망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우리가 안겨 있는 자연 그 자체의 일부입니다. 자연에서 우리는 통합된 부분이자,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자연 표현 방식 중 한 가지로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이러한 점이 우리에게 세상의 일들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

 

 

7.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해서 우리가 자연과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적인 것 또한 우리의 자연이기 때문이지요. 자연은 여기, 우리 지구에서 자신의 한 부분과 상관관계를 맺어 서로 영향을 끼치고 정보를 교류하면서 끝없이 조합하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

 

 아마도 자연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형태로 무한한 우주 공간에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기, 우주에 정말 드넓은 공간이 존재하는데, 변두리 구석에 위치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런 은하에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일 겁니다. 지구에서의 삶은 그저 우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 한 가지를 맛보는 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영혼은 다른 존재들의 영혼과 그리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

 

 

8.

 우리는 호기심이 많은 종입니다. 원래 호기심이 많은 종 – ‘호모은 최소 열두 종류 정도였는데 이 무리에서 현재까지 살아남은 종은 우리 인류뿐입니다. 우리와 같은 종에 속했던 다른 무리들은 이미 멸종했는데, 그 중 네안데르탈인의 경우 그나마 최근까지 존재했다가 약 3만년 전에 사라졌습니다. … 내 생각에 우리 종도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 우리는 수명이 짧은 종에 속합니다. 우리의 사촌 뻘 되는 종은 이미 모두 멸종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기까지 하고 있지요. 우리가 변화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결과 기후와 환경은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고, 이는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구에게는 별일 아닌 작은 에피소드일 수 있지만, 우리 인간은 아무 피해 없이 지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

 

 아마도 지구 상에서 개인의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종은 우리 인간뿐일 것입니다. 나는 조만간 우리가 만든 문명이 끝나가기도 전에 우리 역시 진정으로 멸종에 이르는 모습을 의식적으로 깨달아야 하는 종이 될까 봐 두렵습니다. …

 

 

9.

 별이 탄생했다가 죽는 것처럼 우리도 태어났다가 죽습니다. 개인적인 죽음일 수도 있고 집단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만들고 이끌어온 이 자연 속에 있는 동안, 우리가 자연과 문명, 이 두 세상에 양다리를 걸쳐놓고도 또 다른 무엇인가를 얻으려 자연에서 멀어진다고 하여도 자연은 우리를 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 줄 것입니다. 자연이 있으면 우리는 집에 있는 것입니다.

 

 

10.

 자연은 우리의 집이며, 자연 속에 있으면 집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탐험한 이 화려하고 놀라운 세상. 공간이 하나하나 떨어져 있고,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사물이 어떤 공간에 있지 않을 수도 있는 이 세상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타고난 우리의 호기심이 보여주는 모든 것이 우리의 집, 우리의 자연입니다.

 

 우리 존재도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물들과 똑같이 별 가루로 만들어졌고, 고통 속에 있을 때나 웃을 때나 환희에 차 있을 때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이지요. …

 

 

카를로 로벨리 지음 『모든 순간의 물리학』 -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물리학의 대답중에서 부분 발췌

 

 

 

 

 

 저자는 이탈리아 출신 저명한 물리학자로,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하여 ‘루프 양자중력’ (Loop Quantum Gravity Theory, LQG 시공간을 양자화시켜 중력을 설명하려는 이론)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블랙홀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우주론의 대가라고 한다.

 

 대가답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지만 그만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의 세계, 우주의 구조, 물질 입자와 공간 입자, 시간과 블랙홀 등 거창한 물리학적 개념들을 이 얇고 조그마한 책을 통해 나 같은 문외한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

 

 양자이론에 의하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우주 공간도 빅뱅과 그 이후 별들의 생성과 소멸과정에서 생겨난 빛의 입자 - 즉 광자 들이 채워져 공간 양자를 이루며, 그야말로 지극히 일부 공간을 별들이나 별 먼지 가루, 가스등의 물질 양자가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인류도 별 먼지 가루의 극히 일부이고

 

 생각해 보면 빛이 식물의 광합성을 통해 생명의 원천이 되니, 공간 양자가 이윽고 물질 양자가 되고, ‘빛이 이윽고 사람이 되었다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태초에 그 빛으로 만들어졌다는 그 사람들이 온전히 지금의 사람들일까?

낮 동안 세상을 환하게 채웠던 공간 양자인 저 빛들은 들판을 석양으로 아름답게 물들여놓고선 밤이 되면 다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자연의 이미지는 눈에 보이는 범위 안에서의 푸른 산과 파란 하늘 그리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등 자못 목가적인 풍경인데 반해, 우주 물리학자가 생각하는 자연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포함하는 좀 더 분석적인 우주의 풍경인 것 같다.

 

 나아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고 그로 말미암아 어떠한 행동을 하든 그로 인해 최악의 경우 인류가 멸종되는 것을 자신도 염려하고 두려워할지라도 - 그것 또한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우주라는 무한한 자연의 범위와 법칙에서 벗어남이 없다는, 실제로는 벗어 날 수도 없다는 과학자적 관점을 다시금 음미해 보게 된다.

 

 ‘자연은 우리의 집이며, 자연 속에 있으면 집에 있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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