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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 瞑想錄

 

 

『우주의 삶을 생각하면 인간의 삶, 그 시간은 하나의 점()과 같고, 실체(實體)는 고정되지 않고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것이며, 지각(知覺)은 희미해지고, 육체는 소멸하게 되며, 영혼은 회오리바람과 같고, 운명은 예측하기 어려우며, 명성은 불확실한 것이다. , 육체에 속하는 것은 모두 흐르는 물과 같고, 영혼에 속하는 것은 꿈이요 연기(煙氣)와 같으며, 삶은 전쟁이요 나그네의 잠시 머무름과 같으니, 명성은 후세에 이르면 망각이 된다.

 

  로마제국의 제 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의 말이다. 이 한 마디보다 더 애수 어린 무상관(無常觀)은 없을 것이다. 흐르는 물과 같고 꿈이요 연기인 육신과 영혼을 갖고 이 세상에 잠시 머무르며 삶이라는 싸움터에서 바둥거리는 나그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참모습이고 나의 참모습이다. 덧없는 이 세상에서 내일의 명성을 위해 권세를 다투고 치부에 안달하고 애정을 쟁탈하고 아첨과 비굴을 파는 우리 인간 군상들.

 

  그러나 우리들이 영원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우리들의 시간은 사실은 점에 지나지 않고, 우리들이 확실한 것처럼 집착하고 있는 모든 것은 유동(流動)일 뿐이다. 모든 것은 소멸하고 변화한다.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 삶이요 세계인 것이다

 

   『기억하는 자든 기억되는 것이든 모든 것은 하루살이다.』 그런데 이 하루살이는 얼마나 오만한가?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고 점유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 하루살이는 끊임없는 투쟁에 자신의 대부분을 낭비하고 있다. 우리들은 결국 소멸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당신은 소멸할 것이다. 그렇건만 당신은 소박하지도 않고, 마음의 동요로부터 벗어나지도 못했으며, 외부로부터 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버리지도 못했고, 따라서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도 못했다. 또한 참으로 가치 있는 것에만 지혜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인간을 고통이라는 지옥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이럴 때 인간의 영혼은 종기가 되고 우주에 종양으로 퍼져나가 다시 자신의 영혼을 괴롭힌다.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괴로움이라면 그 이유는 그가 속한 자연으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영혼이 다른 사람을 외면하거나 분노한 사람의 영혼처럼 해칠 뜻을 갖고 대립할 때 그 영혼은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또한, 어느 영혼이 쾌락이나 고통에 압도되었을 때 그 영혼은 역시 자기자신을 괴롭힌다. 아울러, 어느 영혼이 진지하거나 참되지도 못한 일을 하거나 말할 때 그 영혼 역시 자기자신을 괴롭힌다.

 

  이러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는 것이리라.

 

 『시간은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로 이루어지는 강과 같고 그 흐름은 격렬하다. 어떤 사물이든 눈에 띄자마자 흘러가 버리고 다른 것이 그 자리에 나타나며 이 또한 흘러가 버리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봄의 장미, 여름의 과일처럼 눈에 익고 잘 알려진 것들이다. 병과 죽음, 중상과 모반, 그 밖에 사람들을 즐겁게 하거나 괴롭히는 일들뿐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깨달음이 있으면 우리는 『자연에 따르자』는 아우렐리우스의 말의 참뜻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자연은 만물이 거기로부터 나와 거기로 되돌아가는 근원적인 것, 만물에 일관되어 있는 우주의 로고스(logos, 理性) 혹은 신의 섭리를 말한다. 자연에 따르는 삶은 다음과 같으리라.

 

  『바로 이 순간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 한다.

 

  『어떤 신이 당신은 내일 또는 모레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모레든 내일이든 괘념하지 않는다. 그 차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자연을 따르는 모든 말과 행동은 당신에게 어울리는 것임을 명심한다. 또한 남들이 퍼부을 비난이나 그들의 말 때문에 마음 흔들리지 말고, 만일 어떤 행동, 어떤 말이 훌륭하다고 여겨지면 남들이 뭐라고 하든 당신 자신의 본성(本性)과 보편적인 자연의 이치에 따라 곧바로 나아간다.

 

 그러면 삶의 싸움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될 것이다.

 

 『오늘 나는 모든 근심으로부터 벗어난다. 아니 모든 근심을 몰아낸다. 왜냐하면 근심은 밖에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오직 내 마음 속, 내 생각 속에 숨어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우렐리우스 瞑想錄』 『아우렐리우스論 / 황문수』 중에서

 

 


  다른 책을 찾다가 책장 구석에 숨어 명상(?)을 하던 40년 가깝게 오래된 문고판 이 책을 발견했다. 몸의 눈은 얼핏 지나치지만 마음의 눈은 구석진 곳에 숨어있는 것을 더 잘 찾아낸다. 궁금하기 때문이리라. 희미한 추억과 긴 망각의 시간들이

 

 

 로마제국의 황제로서 배반과 중상과 모략이 난무하는 싸움터를 누비다 세상을 떠난 그가 이러한 명상록을 남겼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체험과 반성 속에서 더 깊고 절절한 명상록이 쓰여지지 않았나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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