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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고> 8. 정당하고 정의롭게

불어오는 바람에 잠시 누웠다가 다시 일어서는 들판의 보리처럼...

 

<일본 소고> 8. 정당하고 정의롭게

 

 역사적으로 고대로부터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간 사람들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 문부성 유전자 프로젝트분석 결과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도래인이 전체 일본인의 80%를 차지할 만큼 일본인 형성에 크게 기여 했다. 특히 중국인보다는 한반도에서 온 사람들이 더 많았으며 관서지역에는 한반도에서 건너 온 사람의 후예로 추정되는 유전형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 또한 혼슈 지역 일본인은 아이누인, 류큐인등의 선주민보다 한국인과 유전적 거리가 더 가깝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가야를 비롯한 4국이 전성기를 이룰 때 일본 열도에는 여러 부족이 난립하여 군소지역으로 분할 된 단위부족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가야계는 앞서 언급했듯이 가장 먼저 대마도를 경유하여 규슈로 대거 이주하여 기존 세력을 흡수한 후 규슈 전역을 장악하여 단군신앙을 뿌리내리고 - 규슈 중부 구마모토의 한자어는 雄本(곰숭배)이다 - 혼슈로 진출하여 고대 일본 국가형성의 주역이 되었다고 한다.

 

 백제계는 긴키평야로 상륙하여 고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오사카, 교토, 나라(奈良) 개척의 주역이 되었고, 세력을 키워 일왕가를 장악하였다고 한다. 훗날 백제 멸망 당시 혈연관계인 백제 왕가를 구하기 위해 백제계 일왕은 일본 열도 최초로 원정군을 파병하였으나 금강하구 백촌강 전투에서 신라 당나라 연합군에 패퇴한 바 있으며, 그 당시 수많은 백제 유민들이 일본 열도로 건너갔다고 한다. 얼마 전 왕위 양도의사를 밝힌 일왕 아키히도는 십여 년 전 자신이 백제계 왕가와 직접적으로 깊은 혈연관계가 있음을 밝힌 바도 있다.

 

 역사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큰 줄기로는 옛 부여의 왕가세력이 남하하여 고구려 왕가, 백제왕가, 가야 왕가를 이루고 다시 왜왕가로 건너갔다고도 한다. <*김운회 저 『부여사로 읽는 한일고대사』 참고>

 

 고구려계는 규슈 남부를 거쳐 동경 근처로 진출하였으며, 신라계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 북부를 거쳐 일본 전역으로 진출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도래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도래인들 중에는 역사서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삶을 추구하기 위해 건너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혹간에 어떤 일에 연루되어 추적을 피하기 위해 건너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며, 역사서에도 기록되었듯이 전쟁이나 기술적 필요에 의해 끌려간 사람들이거나, 나라의 멸망으로 한을 품고 건너간 유민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한이 한반도에 대한 증오나 적개심으로 변하여 대대로 쌓여온 것일까?

한반도를 멸시와 타도의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상대적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애써 온 것일까?  

그래서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 조상은 점차 사라지고 고대역사도 사라져버린 것일까?

의문만 꼬리를 물 뿐, 대답은 여전히 역사의 몫이다.

 

 

 

 다만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나아가 국가와 국가 그 어떤 관계에서도 한결 같이 정당하고 정의로운 세상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주변을 괴롭히고 억누름으로써 이익을 얻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과 행동은 정당하지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 대학교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요지를 피력하였다.

정의로운가 정의롭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행복, 자유, 미덕을 들 수 있다.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가, 아니면 불행하게 하는가?

사회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억압하는가?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가, 아니면 고통을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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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소고(日本 小考)> 단편적이고 개인적인 고찰로 사안에 따라 사실과 차이가 있거나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