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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이성선 시집 -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




벌레

 

꽃에는 고요한 부분이 있다

그곳에 벌레가 앉아 있다

 

 

미시령 노을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

 

티벳에서

 

사람들은 히말라야를 꿈꾼다

설산

갠지스강의 발원

 

저 높은 곳을 바라보고

생의 끝봉우리로 오른다

 

그러나

산 위에는 아무 것도 없다

 

생의 끝에는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많은 짐을 지고 이 고생이다

 

 

나의 기도


다른 사람의 기도를 나는 모르네

 

그 시간 누구와 걷고 싶어하는지

어느 분을 모시고

마음의 차를 나누어 마시며

창 밖을 보고 있는지

 

단지 나의 기도는

내 귀를 풀잎과 나무에게로 데려가는 것

 

혹한의 한겨울

눈 쌓인 가지가 툭 부러지고

그 소리 너머의 깊은 정적 속을

내 귀가 산책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 거기

눈 위에 코요테 발자국으로 남는 것

 

 

이상은 먼저 『김사인 시를 어루만지다』에 소개되었던 이성선 시인의 시집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중 가슴에 와 닿은 몇편이다.

 

이성선(李聖善 1941-2001)시인은 평생을 설악산의 품 안에서 살다 갔으며, 그에게 있어서 설악산은 삶의 터전인 동시에 수행의 도량이었다고 한다그 이상은 이성선 시인의 삶을 묘사한 다음의 詩들로 갈음해도 좋을 듯 하다.  

 

 

이성선 시인

 허 형 만

신선봉이 어느 날 사람 옷 입고 세상에 나와
세상을 거닐다 다시 산으로 돌아갔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이성선이라고도 하고 시인이라고도 하고 그가
육십년을 살았다고도 전하나 그를 다스렸던 
설악산이 보기엔 그는 풀잎이었고 이슬이었고
별이었고 구름이었다 적요의 골짜기를 흐르는
한 줄기 바람이었다

그가 세상을 건너간 뒤
세상엔
무엇 하나 건드려진 게 없었다
무엇 하나 상한 게 없었다

 

 

정상 - 이성선 시인에게 
  
 나태주 
   
누구나 일생에 한번은 정상에 서기 마련, 
그러나 정상에선 가던 길을 잃게 된다 
하늘까지는 길이 나 있지 않기 때문, 
거기서부터 그는 허공을 쪼아 계단을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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