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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시를 어루만지다




김사인 - 시를 어루만지다

 

 

별을 보며

 

이성선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윤동주 이래 선량한 영혼이 또 있었구나.

별빛에 기대어 근근이 나날의 누추를 견디기는 한다만,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순결한 영혼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마음의 이길.

 

시인은 60세를 일기로 스스로 세상을 내려 놓았다.

 

 

비가 오신다

 

이대흠

 

 

서울이나 광주에서는 비가 온다는 말의 뜻을

알 수가 없다

비온다는 말은

장동이나 장평 그도 아니면

고흥반도쯤 가야 이해가 된다

 

내리는 비야 내리는 비이지만

비가 걸어서 오거나

달려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어떨 때 비는 싸우러 오는 병사처럼

씩씩거리며 다가오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그 병사의 아내가

지아비를 전쟁터에 보내고 돌아서서

골목길을 걸어오는 그 터벅거림으로 온다

 

그리고 또 어떨 때는 

새색시 기다리는 신랑처럼

풀나무 입술이 보타있을 때

산모롱이에 얼비치는 진달래치마로

멀미나는 꽃내를

몰고 오시기도 하는 것이다 

 

 

*‘비가 걸어서도 오고 때로 달려서도 온다는 것. 상상이 아니라 실제 그렇다는 것. ‘씩씩거리며싸우러 오는 병사 같은 비가 있는가 하면, 지아비를 전쟁터에 보내고 골목길 돌아오는 아낙의 걸음새같이 막막한 비도 있다는 것. 실제 그렇다는 것.

 

이 詩에 따르면 이쯤의 분간은 있어야 비가 온다는 말의 뜻을안다고 말발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적어도 그쯤의 분간으로 비를 앎직한 이라야, 더불어 인생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단호하고 분명한 이 심미적 자신감에 통쾌히 동의한다.

 

.

詩集

                  윤석위

 

詩集을 사는 일은

즐겁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 책을 사다가

모르는 이의

불꽃 같은 詩가 있는

詩集을

덤으로 사는 일은 즐겁다



*“詩集이란 얼마나 젊고 가슴 설레는 이름이었나. 그 내밀하고 수줍은 달아오름이며, 차라리 통증과 같던 매혹을 몸은 잊지 않고 있다. “아이들 책이나 사야 하는 이제에도, 급여명세서와 관리비 영수증들의 시간 가운데서도.

 

무심코 펼친 시집의 한 구절에 불붙어, 마음의 뒤켠을 다시 철부지로 헤매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아시다시피 그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마저 아니라면 우리가 무엇으로 순결하겠는가.

 

, “불꽃 같은 詩”!

아이들 책을 사다가” “덤으로만난, 그것도 모르는 이.

 

 

장수막걸리를 찬양함


박찬일


거울은 빈털터리다 
우주도 빈털터리다 
우주라는 말도 빈털터리다 
빈털터리도 빈털터리다 
막걸리도 빈털터리다 
막걸리가 맛있다 

 

, 막걸리가 맛있습니다

 

 

*이 빈털터리 막걸리 맛이라니!

거울에서 우주로 이어지는 점층의 정점에, 이런, 막걸리가 있는 것이다. 아니 막걸리보다 위에 맛있음이 있다!

 다 빈털터리이고, ‘빈털터리란 말까지 빈털터리이고 말았으니 언어도단의 자리. 마침내 거룩한 무소유에 이른 게 아니겠는가. 삼라만상의 저 기이한 텅 빔을 보아버렸으니 그 자리가 큰 허무의 심연이자 대자유의 자리 아니겠는가. 그 오묘불가사의를 이 시는 빈털터리란 묘하고 얄궂은 단어 하나로 받들어 버티는 셈인데, 그 말을 시의 화자는 짐짓 아무것도 아닌 듯이 칠레팔레 뿌리는 시늉이다. (! 이것까지도 큰 도인들의 무애행을 닮았다.)

 

한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 막걸리가 맛있습니다라는 것이다. 개시허망(皆是虛妄) 빈털터리인데, 이런, “막걸리가 맛있다.

 

 

詩를 어루만지는 김사인 시인의 손길이 봄날 양지 녘처럼 따사롭다.

시인은 이끄는 글에서 시에게 가는 길을 이렇게 열어 놓고 있다.

 

詩를 포함하여 문학예술은 부분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에 관여하지만, 아름다움의 문제와 더 인연이 깊다.

 

詩를 읽는다는 것은 머리와 눈으로 활자의 말뜻을, 그 사전적 의미들의 조합을 이해하는 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를 읽는 일이란, 시를 이루고 있는 소리, 말뜻, 행과 연등 각 단위들을 포함하여 시 전부를 어루만져 보고 냄새 맡고 미세한 색상의 차이를 맛보는 일,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를 잘 옷 입어 보는 일이다.

 

겸허하게 마음을 열고 그 앞에 서면 비로소 詩는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하소연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