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고속도로 순찰대의 전화를 받고 낯선 도시의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동생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밤길에서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는 순간 얼마나 춥고 외로웠을까.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을까.
손끝에서 만져지는 냉기와 어머니의 오열하는 모습 사이에서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굳게 감긴 동생의 눈을 다시 한번 쓸어 내리고 복도에 앉아 사망진단서를 기다리는 일 밖에는…….
장례를 마치고 동생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다이어리 첫 장에 적힌 짧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문태준 시인이 천양희 시인의 시 <뒤편>에 붙인 단상이었습니다.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은 뒤편을 감싸 안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뒤편에 슬픈 것이 많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마치 비 오기 전 마당을 쓸 듯 그의 뒤로 돌아가 뒷마당을 정갈하게 쓸어 주는 일이다.”
이 말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존재의 뒤편이 있고, 슬프고 남루한 것들은 주로 그 뒤편에 숨겨져 있기 마련이지요. 진정한 사랑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곳까지 눈과 귀와 손과 발을 정성스럽게 기울이는 일이라는 것을 제 동생은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이런 마음과 태도를 길지 않은 삶을 살았던 듯합니다.
장례식장을 찾아와 진심으로 애도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 가족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살았는지, 얼마나 품이 깊고 온화한 사람이었는지 뒤늦게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죽음이 존재의 뒤편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일이라면, 그가 남긴 뒤란은 소박하고 정갈했습니다.
동생의 책꽂이에는 오래된 번역 시집 몇 권이 꽂혀 있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기도 시집>도 있더군요. 무어라 기도조차 할 수 없을 때, 그 시집 속의 시들을 소리 내어 읽는 일은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제 눈빛을 꺼 주소서. 그러나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발견하고는 비석 새기는 분에게 그 문장을 묘비명으로 새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육체의 눈은 감았지만 영혼의 눈은 새로운 영원을 향해 열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레터 – 두 시인의 편지>중에서 나희덕 시인이 장석남 시인에게 보낸 편지중의 일부이다.
동생의 황망한 죽음을 담담하게 적어내려 간 글 뒤편에는 존재에 대한 깊은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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