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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




인생의 어느 계절에 이르면 우리는 여러 장소를

자신이 살 터전으로 생각해 보기도 한다.

 

어디에 앉든지 나는 그곳에 살게 될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경치는 나를 중심으로 전개 된다.

집이란 앉은 자리 이외에 그 무엇이겠는가?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별 쓸모가 없어 그냥

내버려 둔 터전을 찾아낸다.

사람들은 그 집터가 마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내가 보기엔 마을이 거기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여기라면 살아볼 만하군, 나는 중얼거린다.

그리고는 거기서 한 시간 동안 지내면서

여름과 겨울을 그려본다.

몇 년이란 세월을 보내면서 혹독한 겨울과 싸워낸 뒤

다시 봄을 맞는 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한 나절이면 충분하다.

과수원, , 목장 등으로 땅을 나누고,

어떤 멋진 참나무나 소나무가

문 앞에 서있으면 좋겠는가를 결정짓는 데는...

또한 나무가 흔들릴 때는 언제, 어느 쪽에서

보아야 가장 멋있을까를 결정짓는 데는...

 

그리고선 나는 이 땅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놔둔다.

왜냐하면 나는 이 농장을 소유할 만큼 소유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잠시나마 나의 청빈(淸貧)에 아무런 손상을

입힘이 없이 잠시나마 부자가 된 경험을 갖게 된다.

그러나 나는 농장의 경치만은 그대로 소유하기로 하며,

그 후에도 가끔 경치를 즐기며 지내기로 한다.

 

 

한 詩人이 농장의 가장 값진 부분을 즐기고 떠날 때,

농장주는 그가 그저 야생사과 몇 개만을 따 갔으려니

여길 것이다.

 

그 농장주는 시인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을 빼가고

그 찌꺼기만 남겼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중에서

 

 

상상이 되었든 아니면 공상이 되었든

굳이 소유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고

그로 인해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글입니다.

 

사실 소유가 가져다 주는 성취감은 잠시이고

그것을 유지 관리하는데 마음 쓰느라

오히려 번거로움을 겪은 경험이 대부분입니다.

 

생각의 자유와 마음의 평화를 얻고

그래서 부자가 되는 길은 언제나 바로 곁에

있어 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만 급하게 서두르느라 그 입구를 지나치기 일쑤였지요.

 

 

이상은 십 년 전에 적었던 글이다. 생각나 꺼내 옮겼다.








 집 근처 산책길에서 만나게 되는 어느 노부부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다.

아마도 귀농하신 분들이 아닐까 짐작된다. 전에는 주위와 마찬가지로 논이었는데 작년부터인가 흙이 메워지고 작은집이 들어서더니 올해 들어 이렇게 변모하였다.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시간 베란다에서 밭을 바라보는 노부부의 모습이 멀리서 보아도 정겹다.

 

 이제는 욕심을 더 내려놓고 될 수 있는 한 자급자족하며 소박하게 살아가고픈 내게,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한 상상을 불러 일으켜주는 삶의 터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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