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연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연이 인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은신처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제도는 자연을 통제할 수도 자연을 감염시킬 수도 없다. 자연 안에는 인간 세상과는 다른 종류의 권리로 가득하다. 자연 속에서 나는 완전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만일 이 세상이 온통 인간의 것으로 차 있다면 나는 기지개를 켤 수 없을 것이고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나에게 인간은 제약인 반면에 자연은 자유이다. 인간은 나로 하여금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한다. 그러나 자연은 나를 이 세상에 만족케 한다.
자연이 주는 기쁨은 인간의 통치와 정의에 전혀 지배받지 않는다. 인간의 손이 닿으면 모든 것이 더러워진다. 인간이 생각을 하면 하는 생각마다 모두 도덕화 되고 만다.
아마 인간에게 자유롭고 기쁨에 찬 노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에 기반을 둔 기쁨과 비교해 볼때 자연에 기반을 둔 가장 작은 기쁨마저도 얼마나 순수한가!
자연이 주는 기쁨은 사랑하는 이가 우리에게 해준 솔직한 말 한마디에 비유할 수 있다.
"인간, 인간은 악, 모든 악의 근원!"
이러한 글을 쓰는 산문작가들의 도덕과 법률은 얼마나 따분하겠는가! 그들은 인간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아무리 강력한 법률이라도 작은 기쁨을 이겨낼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에게 여유있는 공간을 갖고 있다. 그것은 자연이다. 인간 정부의 재판권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비애의 기록이자 도덕적 격언과 법률의 기록인 당신의 책들을 구석진 곳에 쌓아 두라. 집 밖에서 자연은 웃을 것이다. 유쾌한 자연의 벌레가 머지않아 그 책들을 갉아먹고 말 것이다. 대초원은 법률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다. 자연은 무법자의 대초원이다. 우체국과 자연이라는 두 세계가 있다. 나는 그 둘을 다 알고 있다. 나는 은행을 잊고 지내듯이 인간과 인간의 제도마저도 잊고 지낸다."
- 소로우 일기 1853.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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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기 100년 전에 소로우가 남겼던 일기이다.
1999년 가을 나는 나를 키워준 도시를 떠나 무작정 강원도 산골로 들어갔었다. 해도 해도 모자랄 준비는 법정스님과 소로우, 그 분들 몇 권의 책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말이다. 위의 대목을 다시 되뇌며 그때의 설렘과 부푼 꿈을 떠올린다. 설렘과 꿈은 언제나 우리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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