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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 한 오라기의 혁명 -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序文 중에서

 

자연에서 만물유전(萬物流轉)이라는 변화가 있을 뿐 진보적인 의미의 발달은 없습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자연이 스스로 멸망하는 일은 없습니다그러나 자연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서 쉽게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 자연 파괴는 본래 자연과 하나인 인간이 스스로 자연을 죽이는 자살 행위입니다.

 

 그것은 인간에 의한, 신과 인간의 파괴와 죽음을 의미합니다. 신이 인간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신을 버리고 멸망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그릇된 지혜를 내세우며 푸르름을 잃어버린 대도시 위주의 현대 문명은 글자 그대로 사막의 신기루 같아서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이제 인간은 돌아갈 곳이 없는 우주의 고아로 전락하느냐, 아니면 지금까지의 흐름을 돌이켜 신의 품으로 돌아가느냐 하는 그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인류의 파국을 막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자연 파괴의 선두에 서있는 인류가 이제 반전해서 숲의 수호신이 되어 녹색의 부활을 위해 노력하는 길뿐입니다.

 

자연은 본래 인간의 용훼(容喙)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신이 천지만물을 창조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인간이 대리 관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자연의 만물이 합하여 생명을 창조하고 신을 창조해 온 것입니다. 신이나 자연은 인간을 초월한 실재입니다. 신은 어리석은 인간의 지구를 지켜주지 않습니다.

 

자연농법이란 자연의 의지에 따라 영원한 생명이 보증되는 에덴 동산의 부활을 꿈꾸는 농법입니다. 그러나 저의 자연농법을 향한 40여 년의 길은 그대로 인간 부활을 위한 신에 대한 수도(修道)였다고 하기 보다는, 자연으로부터 이탈한 한 남자의 방황의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이지 돌아가고 싶다고 고뇌해 온 한 농부의 고백록에 지나지 않습니다. 백 가지를 말하고도 그 하나를 말하지 못해서 무엇 하나 남길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참회록인 것 입니다.”

 

 

자연농법은

 

자연농법은 이미 몇 천 년 전의 오랜 옛날부터 존재해 왔고, 현재도 원류로서 엄존해 있으며, 장래에도 역시 농업의 궁극 목표로서 남게 될 농법입니다.

시간의 흐름에서 말하자면, 때로 원시 농법으로 보인다거나 현대 농업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거나, 또는 미래를 선취한 농법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 자연농법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변화가 자유로우나 축소나 확대가 없는 부동의 일점 입니다.

좌니 우니, 근대화니 비근대화니, 과학적이니 비과학적이니 라며 요동하고 있는 농법이 과학농법이라면, 자연농법은 항상 부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새는 씨 뿌리지 않고 논을 갈지도 않지 않느냐, 그렇지만 먹고 산다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했던 것도 역시 자연 농법이었고, 인도의 간디가 행한 것도 무수단의 수단, 무저항의 농법 그것 역시 자연 농법입니다. 그리고 무위자연이라고 설파한 한마디만 보더라도 노자가 농부였다면 자연농법이었을 것입니다.”

 

 

자연농법의 4대 원칙

 

첫째는 땅을 갈지 않는 것입니다. 無耕起 

논밭은 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땅을 갈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대지는 사람이 갈지 않아도 스스로 갈아가며 해마다 지력을 증대해 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인간이 기계로 갈지 않더라도 식물의 뿌리나 미생물, 그리고 지렁이 등 땅속 동물들의 활동으로 생물적, 화학적 땅 갈이가 행해집니다. 더욱이 이쪽이 보다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비료를 쓰지 않는 것 입니다. 無肥料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방임하면, 토지는 해마다 메말라 갑니다. 또한 인간이 서투른 경작이나 약탈 농법을 행하면, 당연히 토지는 척박해져서 비료를 필요로 하는 토양이 됩니다.

그러나 본래 자연적인 토양이란 동식물의 생활 순환이 활발해 질수록 비옥해 지기 때문에, 작물을 비료로 키운다는 생각을 버리고, 흙으로 기르는 것, 즉 비료를 쓰지 않는 재배를 원칙으로 합니다.

 

셋째는 농약을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無農藥

자연은 항상 완전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될 병이나 해충이 발생하는 일은 없습니다. 경작 법이나 시비(施肥)를 잘못해서 병약한 작물이 생길 때만 자연이 균형을 회복하기 위하여 병충해가 발생하니 소독제 등이 필요합니다. 건전한 작물을 만드는 일에 노력하는 쪽이 현명한 일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넷째는 제초를 하지 않는 것 입니다. 無除草

풀은 당연히 돋아나야 하기 때문에 돋아나는 것입니다. 잡초도 발생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 속에서는 잡초 역시 무엇인가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영원토록 한 종류의 풀이 토지를 점유하는 일도 없습니다. 시간이 가면 반드시 교체됩니다. 원칙은 풀에 맡겨두는 것이 좋다입니다. 적어도 인위적으로 기계나 농약으로 섬멸 작전을 편다거나 하는 일 없이 풀은 풀로서 제압하고 녹비(충분히 썩히지 않은 생풀이나 생나무의 잎으로 만든 거름) 등으로 제어하는 방법을 취합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농사를 위해, 되도록 아무 것도 하지 않고자 노력해왔을 뿐입니다. 40년에 걸쳐서, 저런 것은 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하며, 되도록이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방법으로 농부의 길을 걸어온 데 지나지 않습니다.

 

인생에는 목표가 있으며,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 있는 삶이냐는 말을 하지만, 인간에게 목표 따위는 본래부터 없습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저는 40년 전에 알았습니다. 그 모두가 인간이 제 멋대로 정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유해지고 행복해지리라는 착각 속에서, 헛된 목적을 세우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보잘것없는 삶이 되고, 보람 없는 생활이 되지 않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아무런 목표도 없이 욕심을 내려놓고 지낼 때 거기서 가장 유쾌한 세계가 전개됩니다.

 

인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일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만약 제가 사회활동을 하고자 한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운동을 하는 것 밖에 달리 할 운동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되면 자연히 세상은 평화롭게 되고, 풍요로워 지며 이러쿵 저러쿵 말할 일들도 사라질 것입니다. “

 

후쿠오카 마사노부 짚 한 오라기의 혁명중에서 발췌

 

 

앞서의 글 야마오 산세이 어제를 향해 걷다에 소개된 내용을 따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농법 안내 서적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이 평생을 바쳐 스스로의 믿음을 찾고 실천해 나간 구도서(求道書)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분은 농사는 물론 살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평생 부단한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