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이 詩가 될수 있을까? 삶이 詩가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詩가 아니라 죽음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삶에 너무나도 넌덜머리가 나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원래 사람들은 일상의 삶 따위를 문제 삼지 않고도 잘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일까?
나는 가장 중요한 물음은 우리가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야 올바른 생을 살아가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물음에 대한 진지한 해답을 찾고자 한 책을 아직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다. 물론 물려받은 재산으로 사는 사람들이나, 정직하지 못하게 그릇된 방법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은 이 물음에 대답할 자격이 없다.
우리 사회는 많은 기술을 갖추었지만 이점에 대해서만은 아무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 문제가 고독한 개인의 사색에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추위와 굶주림을 피하기 위해서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나에게 권하는 삶의 방식을 좇아 살기보다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이대로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의 천성에 더 어울릴 것이다.
만일 내가 이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면, 즉 어떤 일인가를 이루어내고 싶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제안대로 생계를 꾸리기 위해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굶주림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소로우 일기> 1851. 0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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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적었던 먼지나는 글을 꺼내 다시 읽어 본다.
소로우 편지 - 생명과 자연과 영혼의 빵
"사람들은 말합니다. ‘자신의 빵을 얻어야 한다.’고. 그렇다면 자신의 빵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나는 그것이 비단 자신의 소유가 아닌, 자신의 손으로 직접 구운 빵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벌어들이고 있는 빵은 너무 시큼해서 고통스럽기 때문에 값싼 설탕으로 단맛을 내고, 포도주와 식초를 거쳐 때로는 시큼한 냄새가 날정도로 발효한 뒤, 표백제에 의해 표백되는 그런 빵이 아닌가요? 이것이 과연 우리가 삶에서 얻어야하는 빵인가요?
사람은 진정 이마에 땀을 흘리며 빵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마 속 지성의 땀으로도 빵을 벌어야만 합니다. 육체는 단지 육체를 먹여 살릴 뿐입니다. 살면서 내가 맛본 진정한 빵은 아주 적은 양에 지나지 않습니다.
빵을 어떻게 벌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동시에 흥미 있고 매력적인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그렇게 살듯 이 문제를 회피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하고 실질적인 문제입니다.
구차하고, 생각이 짧고, 경솔한 방법으로 빵을 얻는 일에 만족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빵을 벌기위해 어떤 이는 사냥을 하고, 어떤 이는 고기잡이를, 어떤 이는 도박을 하고, 심지어 어떤 이는 전쟁터에 나가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진지하게 빵을 구하는 이들만큼 마음이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자신의 가슴과 삶으로 모든 힘을 다해 빵을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빵을 얻을 것이며, 그렇게 얻은 빵은 분명 매우 맛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상적으로 진실인 것처럼 현실적으로도 진실이며, 정신적으로 진실인 것처럼 물질적으로도 진실입니다.
아주 작은 빵, 아주 조그마한 빵 부스러기라도 질이 좋은 빵이면 충분합니다. 그 안에 담긴 영양분이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기 전에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위해 최소한의 빵 한 조각이라도 벌고, 그것을 맛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생명의 빵’과 같은 것으로, 그 빵을 먹음으로써 생명의 빵 역시 함께 삼키는 것입니다."
1848년 5월 2일,
소로우가 신학자 해리슨 블레이크에게 보낸 편지 중 한 부분입니다.
영원 속에서 짧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면 이 세상은 비록 작더라도 남이 아닌 자신의 빵을 구하고, 그 생명의 빵을 맛보는 데 삶의 의미가 있음을 적고 있습니다.
물론, 그 빵을 어떻게 벌고 구하는가는 여전히 나에게도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어느 한순간 쉽고 명료한 것 같다가도 희미하고 애매할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소로우 그분은 그 길을 인간사회를 넘어선 자연 속에서 찾아낸 것 같습니다. 편지는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빵은 시큼할 필요도, 소화하기 힘들 만큼 딱딱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마음뿐만 아니라 육체에도 똑같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자연은 내 정신의 상상력을 키우는 것처럼 내 몸도 먹여 살릴 것입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약속한 것을 그대로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자연은 시인의 눈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무지개와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것처럼... 자연이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보금자리와 따뜻함을 제공하는 것 또한아름답고 감동적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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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열망이 높은 만큼 하늘은 깊습니다. 나무가 자라기를 열망하는 만큼 나무는 그것에 어울리는 높은 곳의 대기를 만납니다.
아주 힘없는 식물이라도 단단한 땅과 바위의 갈라진 틈새를 뚫고 올라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물리적인 힘으로도 사람의 의지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자연에 대한 관찰을 통해 인생을 통찰함으로써 진실한 영혼이 나에게 깃드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족과 행복도 절로 찾아오는 것임도요... 편지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내가 온 존재를 바쳐 몰두하는 단 한 가지의 일은 ‘바라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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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으로써 나는 ‘영혼을 찾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영혼이 나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동물들처럼 작은 것에 만족하고 어린 두더지처럼 자주 행복합니다."
이 편지를 읽으며 안팎으로 만족과 행복을 찾으러 쫒아 다니기보다는 만족과 행복이 나를 찾아오는 길을 닦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05. 0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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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이 시가 될 수 있을까? 거창한 목표나 욕심 다 내려놓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삶이면 어떨까? 다시 먼지가 되어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2017. 12. 15
"당신을 만나서
선생님이나 변호사, 검사나 약사, 의사나 화가
엄마나 아빠, 또는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먼지가 되어도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 아주 오랜 꿈은 먼지가 되는 것
아무도 모르게
남들 눈에 띄지 않게 폴폴
어딜 가야 한다는
무엇 되어야 한다는
그런 것 없이
그냥 이러저리 떠다니다가
빗자루에 휙 쓸려 쓰레기통에 담겨 버려지기도 하는
또는 운 좋게 어느 집 방구석에서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십 년이고
가만히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일 필요도 없는
나는 먼지가 되고 싶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어요"
- 먼지가 되겠다 / 송선미
***
<먼지가 되겠다>는 송선미 시인의 첫번째 동시집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에 수록된 동시이다. 물론 어른도 함께 읽는 책이라는 부제가 있지만, 막상 아이들은 이 시를 읽으며 어떻게 이해할까? 먼지가 되겠다니...
태초에 우주에 대폭발이 있었고, 그로인해 정처없이 우주를 떠돌아 다니던 우주 먼지와 가스들이 뭉쳐져 수많은 별들 중 하나인 지구가 되고, 그 지구의 먼지 한부분이 뭉쳐져 땅이 되고, 그 땅위에 나무가 되고, 그 나무 곁에 집이되고, 그 집에서 잠자고 밥먹고 노는 내가 되었다는 것을 이해할까? 내가 원래 먼지로부터 왔으며, 먼지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이해할까? 2019. 0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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