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자 도덕경> 老子, 道를 묻다

<道 열하나> 채움의 이로움은 비움의 쓰임 때문 일진데



 


 

三十輻共一轂,
當其無,有車之用。
埏埴以爲器,
當其無,有器之用。
鑿戶牖以爲室,
當其無。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無之以爲用。



老子는 말했고,
나는 이렇게 들었다.

 "서른 개의 바퀴 살이 하나의 통에 모여있으니
그 빈 공간에 바퀴의 쓰임이 있더라.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드니
그 빈 공간에 그릇의 쓰임이 있더라.
문과 창을 뚫어 집을 만드니
그 빈 공간에 집의 쓰임이 있더라.
따라서 채움의 이로움은 비움의 쓰임 때문이더라."



*
 바퀴가 처음 쓰인 것은 도공들의 물레라고 한다.
그게 발전하여 수레 바퀴로 쓰이면서
좀 더 빠른 이동을 위해 바퀴살 형태가 되고
나아가 전쟁의 중요한 무기가 되었다고 한다.
알다시피 나중에는 거기에 날개까지 달았다.

 

 인간은 비움으로써 이로움을 얻었으나
비움의 의미를 간과하고 문명의 수레바퀴를 통해
욕망을 더 채워왔음을 老子는 지적하는 듯하다.


 

**
알고보면 문명의 이기(利器)가 반드시
모두에게 이로운 것 만은 아닌 듯하다.
문명도 다른사람들을 위해 발전되었다기 보다는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기위해 발전된 듯 하다.


 

***
문명과 문화가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사전을 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문화(文化)는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며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주로 정신적 소산을 의미했으나, 
문명(文明)은 삶의 풍요와 편리함을 위한
기술적, 물질적 소산만을 의미했다.

 

그러고 보니,
기술 문명, 물질 문명은 익숙한 말이었지만,
기술 문화, 물질 문화는 전혀 익숙한 말이 아니다.

 

그러나 사전의 뜻을 음미해 보면,
문명이나 문화가 무한한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있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래서 문명이나 문화는
밝음과 어두움의 경계가 있고,
그 한계가 있는 것 같다.


 

****
 문명이나 문화는
온갖 문물, 제도, 규칙들을 아우른다.
그런데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을 생각하면
그곳에는 아무런 문물이나 제도나 규칙이 없었다. 


 우리 인간은
아무런 규칙이 없는 세상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죽으면 다시
규칙이 없는 세상으로 돌아간다.
다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비워진 무의 세상에서 와
이것 저것 채우려 애쓰다가
다시 비워진 무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과연 죽음이 슬퍼만 할 일일까?


 

*****
 인간 사회가 만들어내고 일이 터질때마다
짜집기하는 온갖 법률이나 제도, 규칙들은
아무리 공정하고 공평하려고 해도 자연의 이치에
비하면 결코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老子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에는 규칙이라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그 근저에는 사회 규칙을 뛰어 넘는
인간의 생명 규칙이 있고,
이는 전적으로 자연의 이치에서 유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