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寵爲上辱爲下,
得之若驚,失之若驚,
是謂寵辱若驚,
何謂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老子는 말했고,
나는 이렇게 들었다.
"천하 만물은 따로 편견이 없다.
총애를 받거나 미움을 받거나
나와는 무관하다고 여겨라.
총애를 받음은 이윽고
그것을 잃게된다는 말이니
그것을 얻음도 그대의 본질이 아니고,
그것을 잃음도 그대의 본질이 아니다.
어려움을 네 몸과 같이 대하라.
그대가 어려움을 가지게되는 까닭은
그대가 몸을 지니고있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몸이 없다면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몸과 같이 천하를 아낀다면
천하도 그대를 아낄 것이다.
반면에 제 몸을 하찮게 여긴다면
천하도 그대를 하찮게 여길 것이다."
*
본질(本質)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을 그 자체이도록 하는 고유함'이다.
마당의 나무와 꽃들은 각자 이름지어지듯
그 고유함이 있다.
내가 그들 중 어느 것을 좋아하느냐는
그 나무나 꽃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사람에게도
각자 이름이 있듯 그 고유함이 있다.
권력이나 재물을 가진 게 많으냐 아니냐는
그 사람의 존재를 가르는 본질이 아니다.
그것들을 떠나서 인간적이고
인간미가 몸에 배어있는 사람일수록
인간의 본질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권력이나 부의 동일선 상에
행복을 올려 놓고 다시 연장하여
그 사람의 본질과 대등하게 치부하곤 한다.
老子가 말하는 대로 인간의 본질은
자연 만물 그대로의 본성(nature)과 같고,
자연 만물의 한 요소(essence)로서,
자연 만물과 근원(root)을 같이하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
흔히 몸은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고들 한다.
몸이 정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뉘앙스가 있다.
그러나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몸이 없으면 정신도 없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지 못하면,
정신도 올바르게 유지되기 어렵다.'
라고 강변한다.
사실 사람의 몸에서 머리의 명령과
상관없이 움직이는 부분이 많다.
자율신경과 관련하여 숨쉬기, 심장의 박동,
소화작용, 대부분의 장기 작용 등은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즉, 생명 유지에 필수 기능들은
머리의 통제와 무관하다.
그러고 보면 정신은 몸과 함께하되
제대로 살아가는 의미를 정립해주는
역할이 가장 큰 것인지도 모른다.
老子는 몸과 정신을 상호 보완하는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는 것 같다.
'생각에 욕심이 적으면 근심도 적고,
몸에 관한 욕구가 적으면 근심 또한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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