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꼬불꼬불하고 건조하고 인적 없는 낡은 길을 그리워한다. 그 길은 마을 먼 곳으로 나를 이끈다. 나를 지구 너머 우주로 인도하는 길. 그러나 유혹하지 않는 길. 여행자의 이름을 생각하지 않아도 좋은 길. 농부가 자신의 작물을 짓밟는다고 불평하지 않는 길. 최근에 건축한 자신의 시골 별장을 무단으로 침입했다고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 길. 마을에 작별을 고하고 걸음을 재촉해도 좋은 길. 순례자처럼 정처 없이 떠나는 여행의 길. 여행자와 자주 부딪치기 어려운 길. 영혼이 자유로운 길. 벽과 울타리가 무너져 있는 길. 발이 땅을 딛고 있기보다는 머리가 하늘로 향해 있는 길. 다른 행인을 만나기 전에 멀리서 그를 발견하고 인사 나눌 준비를 할 만큼 넓은 길. 사람들이 탐을 내 서둘러 이주할 정도로 토양이 비옥하지 않은 길. 보살필 필요 없는 나무뿌리와 그루터기 울타리들이 있는 길. 여행자가 그저 몸 가는 대로 마음을 맡길 수 있는 길. 어디로 향해 가든 오든, 아침이든 저녁이든, 정오든 자정이든 별 차이가 없는 길. 만인의 땅이어서 값이 헐한 길. 얼마만큼 왔나 따져볼 필요 없이 편안하게 걸으면서 생각에 몰두하는 길. 숨이 차면 천천히 왔다갔다하는 변덕마저도 소중한 길. 사람들과 만나 억지로 저녁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거짓 관계를 맺지 않아도 좋은 길. 지구의 가장 먼 곳까지 갈 수 있는 길.
그 길은 넓다. 그 길에 서면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도 크고 넓어진다. 그 길로 바람이 불어와 여행객의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고나서 나의 인생이 나에게로 온다. 나는 사냥꾼처럼 몸을 숨기고 기다린다. 바다가 보이고 허클베리가 잘 익은 언덕에 올라 바위에 기대어 서면 그때 정말 나의 생각은 무한하게 펼쳐질 것이다. 땅이 내뿜는 안개, 멀리서 부는 돌풍. 내 영혼의 감응에 호응하여 나에게로 다가온 이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다가올 나의 인생도 내 영혼의 어떤 응답이 아닐까? 나를 가둘 만큼 담이 높아서는 안된다. 담은 낮고 틈이 많아야 한다. 전망을 가릴 만큼 나무가 너무 웅장해서는 안 되고 언덕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도 안된다. 땅이 시선을 끌 만큼 너무 비옥해서도 안된다.
그것은 그저 길이고 인생이어야 한다. 마을의 최연장인 노인이 한번도 손본 기억이 없고, 또 손볼 필요도 없는 그런 길이어야 한다. 나는 자주 손본 길은 걷지 않는다. 길을 닳게 만나는 자는 좋지 않은 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색가의 발뒤꿈치나 사색이 길을 닳게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서풍이 손실을 보충한다. 산책하는 사람은 길 위를 걷지만 길을 닳게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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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들이 줄지어 쾍쾍 소리지르며 날지는 않지만 가끔 기러기의 야생 형제들이 멀리 고개 너머로 날아가는 곳. 딱새와 제비가 지저귀고 맷종다리가 울 위에서 노래하는 곳. 작고 붉은 나비가 톱풀 위에서 쉬는 곳. 아이가 모자를 벗어들고 그 나비에게 다가가지 않는 곳. 그곳을 나는 걷는다. 기분에 따라 때로는 빨리, 때로는 천천히 걷는다. ... 소만이 홀로 풀을 뜯기 위해 길옆을 서성거리는 곳. 길 안내판은 바닥에 누워 있고 사람이 직접 하늘의 서드베리와 말보로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곳. 그 길이 내가 여행하는 길이다." <소로우 일기> 1851. 0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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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내 오두막 시절, 이 글을 소리내서 읊조리곤 했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음악가 Phil Coulter의 <Take Me Home>을 들으며... 이 산책 전문가의 글은 지금도 나를 설레게 한다. 2017.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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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春.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개울에 얼음도 녹고 길섶에 풀들도 기지개를 켤 것이다.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이야 차겠지만 등뒤 햇살이 따사로워 더 이상 웅크리고 걷지 않아도 될 그런 봄날이 올 것이다. 2019. 0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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